전작 누가 남자를 두려워 하랴를 연출한 동영상 감독은 차기작으로 모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작품을? 모델 고대해가 예의상 묻자 감독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누가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라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감독은 고대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보통 여자 같으면‘ 어머 왜 이러세요? 라든가 또는 그런 눈빛을 보내든가, 대가 센 여자 같으면 왜 보니? 30초 이상 여자의 동일 지점을 주시하면 보면 성폭행인 거 몰라? 하고 말하든가 또는 그런 눈빛을 보내든가 할 터인데, 고대해는 보거라 보고 싶으면 보고 니 꼴리는
“시리즈물인가요?” 하고 모델 고대해가 질문을 던지자 동영상 제작자인 남자는 순간 당황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기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이는 질문자인 고대해가 이 세계의 용어에 대해 약간의 무지를 드러낸 것으로, 시리즈물이란 적어도 수십편의 연속물로 일관된 주제나 형식을 갖춘 것인데, 미드에서 흔히 보는 ‘미드’엔 섹스‘ 원 뭐 그런 걸 말하는 거였다. 그런데 고대해가 말하는 건 속편을 뜻하는 거 같았다. 뽕 1 뽕 2 다이하드 1 다이하드 2 같은 거 말이다, 물론 베트맨 시리즈처럼 드라마 시리즈물 못지않게 일관된 느낌
이러한, 로맨스와 리얼리즘의 만남, 또는 융합에 대해 40대 동영상 제작자가 커다란 긍지를 가지고 얘기했을 때, 고대해는 그가 어떠한 종류의 감독인지 또는 인간인지 대략 판단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이 이 남자의 전유물일 수는 없었다. 남자가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지만, 동영상을 찍는 상당 수 감독이 다양한 테마와 형식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로맨스와 리얼리즘 쉽게 말해 남녀가 만나 자극적인 행위를 하는 게 무슨 대단한 특허물일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내가 긍지를 내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고대해는 왈가왈부하지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로맨스에 이어 리얼리즘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로맨스는 리얼리즘과 만나야 한다고 정의를 내림으로써 둘 사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는 성인남녀라면 깊이 공감하는 바이지만 아직 이십대 초의 풋풋한 청춘들에겐 크게 어필하는 문제라고 할 수 없었다. 20대라면 당연히 사랑은 죽고 못 사는 것으로, 사랑을 위해 부모 국경 환경은 물론이고 한 목숨 바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과감히 선언함으로써 절대사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로맨스와 리얼리즘이라는 두 화두를 들고 나왔을 때 고대해는 바로 냄새를 맡았으니, 로맨스 - 남녀, 리얼리티-현장 이런 단어를 저절로 연결지었다. 이 동영상 제작자가 하는 작업은, 남녀가 등장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되 그것을 화면으로 시시각각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라고 보면 될 것이었다. 물론 로맨스의 종류와 그 범주 및 구체성의 강도 등에 따라 같은 로맨스물 내에서도 편차가 있을 수 있었다. 고대해는 질문을 하나 하였다. "로맨스라면 여고생 취향의 그런 건가요?" "아, 아닙니다. 성인남녀
고대해가 40대 동영상 제작자에게 동영상이라면 뮤직비디오나 애니메이션도 제작하느냐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자, 남자는 로맨스와 리얼리즘 관련 쪽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이에 그 로맨스와 리얼리즘이란 거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는 바, 로맨스란 그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은 거의 60년 대 풍으로 뭔가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하겠다. 허나 요즘은 ‘로맨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만남, 접촉, 파탄 이러한 세 단계를 밟아, 시작했나 하면 끝나 있고 끝났나 싶으면 다시 새로운 파트너와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40대 동영상 제작자와 천하제일 모델 고대해가 한정식집에서 일금 삼만 오천원 짜리 코스 에이에 소주 두 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잔잔한 대화를 이어 간 지 어언 한 시간이 지났다. 여기서 잔잔한 대화란, 분위기 자체가 선술집처럼 떠들고 마시는 데가 아니고 음식 하나하나도 결코 막 내온 것이 아니기에 거기에 맞춰 사람들의 대화도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국제 항공기에서 흔히 한국인 사업가가 양말을 벗는다든가, 트림을 연속으로 한다든가, 술주정을 하며 큰 소리를 친다든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고함친다거나, 방구
남녀가 만났을 때, 특히 처음 만났을 때, 그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상당히 경직되고 형식적인 태도를 선보이기 마련인데, 음식을 앞에 두었을 경우에도 정신없이 집어먹는 평소의 습관일랑 온데간데없고, 신중히 마치 타자가 공을 고르듯 눈으로 접시 하나하나를 잘 살펴본 다음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뻗어 음식 한 점을 집어 입 안에 고이 넣어 보는 것이다. 이러한 동작이 극히 신중하고 예의바르게 진행되므로 보는 사람마저 숨막힐 듯하며, 저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 이들인지 짐작케 한다. 그러나 오늘의 동영상 40대 제작자와 고대해 모델의 경우
"에이 코스로 해요." 고대해가 한 이 말은 어떤 가격대의 메뉴를 선택할 것인가 사뭇 긴장하며 서 있던 여종업원에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종업원은 좀 더 고가대의 메뉴를 선택하도록 적극 권하지 못한 자괴감이 뒤섞인 얼굴로 "에이 코스요?" 하고 한 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거쳐봐야, 뭘 또 묻느냐는 표정의 고대해의 단호한 얼굴만 확인할 따름이었다. 동영상 제작자인 40대 남자와 위압적인 몸매의 모델 고대해가 유명 한정식집에서 1인 당 35,000원에서 95,000원까지 나열되어 있는 차칸 메뉴를 둘러싸고 서로를 배려하고 있
40대 동영상 제작자가 고대해 모델에게, 한정식집에 마주 보고 앉아 어서 메뉴판을 열어보시라고 함에 따라 고대해는 은박 입힌 그 육중한 메뉴판을 좌우로 활짝 열어젖혔다. 웬만한 여성이면 심장이 떨려 조심조심 열어보며 가격을 훔쳐보았을 터인데,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빛이 되었을 터인데, 우리의 고대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은박 메뉴판을 활짝 열어젖혔을 뿐 아니라 메뉴의 내용까지 사시눈으로 거만하게 훑어보았던 것이다. 보통 여성이면 매우 공손한 태도로, 또는 내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태연한 척 하며 메뉴판을 읽어
고대해가 한정식을 추천하고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이를 받아들여 저녁메뉴는 이 근처에서 꽤 잘 나간다는 한정식으로 결정이 났다. 남녀가 함께 음식을 택할 때 그 주도권은 과거엔 남자가 주로 쥐고 있었으나 차차 여성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게 추세다. 특히 가정주부의 경우 외식 시 남편에게 형식적으로 뭐 먹을까 하고 묻긴 하나, 엄밀히 따져보면 뭘 먹고 싶냐가 아니라 자신이 뭘 먹으면 좋겠느냐는 가벼운 물음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하겠다. 이럴 때 눈치 없이 족발이니 순두부찌개니 해가며 의견을 내봤자, 결론이 이미 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제가 시간을 많이 뺏은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직접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다는, 모 프로덕션 대표이자 동영상 제작자인 40대 남자의 제안은 고대해에게 전달은 되었지만 바로 수락되지는 않았다. 고대해는 그저 엷게 웃었을 따름으로 즉답을 하지 않았다. 이것만 해도 동영상 제작자에겐 희망이 비치는 일이었다. `됐고` 같은 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를 봐라,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자의 진진한 제안이나 배려를 `됐고` 같은 싸가지 없는 말투로 무안을 주며 돼도 않은 불순한 쾌감을 얻고 있는가? `됐고`가 뭔가? 우리 고대해 언
조용한 데로 모시겠다는 40대 사내의 발언에 차나 마저 마시라고 대꾸한 고대해의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것이었다. 담담하기가 마치 물과 같아 `가장 좋은 것은 물`이라는 노자의 `상선약수`가 떠오르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우린 사내들이 흔히 `술이나 마저 마셔` `입 닥치고 영화나 봐` `그만 옷이나 벗어` 같이 말하는 데서, 모든 걸 내려놓고 하던 짓이나 마저 하자는 바람을 읽을 수 있다. 사내는 고대해가 담담하게 나오자 입맛을 다시면서도 일단 한 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야 어차피 마시게 되어 있는 거, `조용한 데로
40대 동영상 제작자가 국립공원 앞 찻집에서 고대해와 함께 한 시간도 어언 두 시간이 지나가, 거리에 어스름이 깔리고, 두 사람은 모든 할 말을 마친 사람처럼 잠시 침묵에 빠져 있었다. 이 차 한 잔을 마시고 저녁이나 하며 저녁에 반주나 곁들이며 차근차근 얘기를 풀어나가고자 했던 사내는, `차나 마저 마시라`는 어쩜 모욕적인 발언을 고대해에게서 들은 이후론 상당히 풀이 죽어 말까지 더듬거리며 별 중요하지 않은 얘기만 간간이 끌어가다 그만 우물 같은 침묵 속에 갇혀 버렸다. 때가 되면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 걸치며 살아온 세월 이
40대의 영상전문가와 떠오르는 모델 고대해가 찻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은 지가 말 그대로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사내가 ‘어디 조용한 곳’을 제의하였으나 고대해는 차나 마시라고 담담하게 응대했다. 어스름이 깔려오기 직전의 도심의 거리는 약간의 기대와 흥분을 안고 술렁이건만 두 사람 사이엔 서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40대 사내는 남자가 아무 조건 없이 또 하나의 미끼도 없이 여자를 유혹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해서 나중에 극적으로 말하려고 했던, 즉 제의라고 할 만 한 것을 좀 일찍 꺼내놓기로
40대의 동영상 감독이 고대해와 찻집에 앉아 첫 남남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저도 지하철을 타고 올 걸 그랬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그 말을 한 의도가 분명하지 않았다. 즉 술을 한 잔 마시면 좋겠는데 차를 갖고 와서 매우 아쉽다는 건지 `나도 이제 서민들과 함께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겪어나갈 작정이다`라고 선포하는 건지, `사실은 승용차를 타고 왔다. 우선 그 사실을 인지하고 차종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져달라` 그런 뜻인지 듣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특히 타고 온 차종까지 은근히 암시한다는
40대의, 선글라스를 윗주머니에 꽂은, 동영상 전문 촬영작가가 피사체 고대해와 커피숍에 서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놓고 서로를 알아가려 할 때, 그 때가 석양의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 흔히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일컫는 그러한 때였다. 석양을 배경으로 고대해가 반은 그늘이 진 얼굴로 담배 한 대를 빼 물었을 때 40대 사내는 매우 정중하게 불을 붙여 드렸다. 서양 영화에서는 매우 오랫동안 써먹었던 흔한 장면이나 대한민국에서는 여자상사를 둔 딸랑이의 짓이거나 술집에서 기분 삼아 아가씨에게 한 번 서비스 해 주는 거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모델 고대해의 사진 촬영을 줄곧 지켜본 40대 사내가 피사체 역할을 하고 있는 고대해에게 "동영상에 어울릴 것 같다고" 말을 던진 후 두 사람 간에는 일종의 친밀감과 탐색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무슨 말이겠는가? `내가 동영상을 촬영하는데 네가 촐연해라!` 이 한 마디 아니겠는가? 그러나 일에는 절차가 있으니 서로를 보다 알아가는 과정이 요구되었다.이렇게 해서 40대의, 선글라스를 양복 윗주머니에 꽂은 사내는 압도하는 눈빛에 당당한 체구의 고대해 모델과 고궁 앞 커피숍에서 가벼운 자리를 갖기에 이르렀다. 약 한 시간에 걸쳐 진작
“동영상에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40대 사내는 고대해가 덤덤하게 그 말을 받아들이자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발군의 여성은 결코 호들갑을 떨거나 갑자기 고무되어 이성을 잃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고대해는 수많은 남성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만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대해가 모델로 나감으로써 그 남성잡지는 상당한 매출 신장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고대해는 지금까지의 어떤 모델과도 그 형태와 느낌과 아우라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남성의 채워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