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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숨기는 직업. 배우.

이진성
  • 입력 2024.03.28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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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 00:53.

수업을 듣는 많은 동생들이 줄줄이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고 있다. 10분 정도 늦는 건 지각도 아니다. 한 시간도 넘게 늦거나 아예 못 오는 경우도 있다. 화가 나지는 않는다. 단지 걱정이 된다.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수업도 안 하고 농땡이 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말로 따지면 월급루팡이라고 한다.

여하튼 레슨 루팡을 하는 시간에도 화가 나기보다는 걱정을 하는 입장에서 작년과 재작년, 내 과거를 들여다본다. 3월은 은근히 싱숭생숭한 달이다. 새해가 시작 됐는데 목표를 향한 발걸음은 더디고 성취한 것은 없고 꽃은 피고 연애는 헤어지고 사귀고 환승을 하는 시기. 3월. 자주 봐오던 매년 3월의 진풍경이다. 아픈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아픈 것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며 잔인한 일이지만 직업의 특성상 아프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프다고 촬영을 미룰 수는 없다. 수업과 촬영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날짜에 맞춰서 덜? 아파야 하는 것도 배우로서 자질이라 생각한다. 아프다고 위로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야박하지만 돈에 미친 한국에서 스케줄을 펑크 내는 것은 죄악이다.

헤어져서 힘든 것도 알겠다. 이별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래도 아닌 척 일터에 나가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사회는 내 아픔을 받아주는 곳이 아니며 응석 부리는 것은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들의 성장을 돕는 대가로 돈을 받는 '선배'이니까. 들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함께 훈련해 주는 일이 내 역할이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업을 할 수는 없어도 더 좋은 상태로 수업을 듣게 해야 한다. 그래서 독설도 한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한 게 그거면 그만 두자.' '최상의 컨디션이 혹시 존재는 하니?' 같은 농담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연기를 배운다는 동생한테 나는 오늘도 감정을 숨기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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