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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자서전

이진성
  • 입력 2024.02.19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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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2. 19. 01:48

자서전들을 보다가. 가방을 열어 최근에 받은 자서전을 훑어본다. 나는 수업할 때에 꼭 자서전을 써보게 한다. 내가 그렇게 연기를 배웠기도 하거니와 연기할 때에 아주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이번에도 새로 받은 것이 있는데 남의 인생을 엿보는 느낌이 들어서 자세히 보진 않는다. 쓰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과제이며,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연기에 적용시킬 곳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알려준다.

빠른 눈으로 수업을 듣는 동생, 배우 혹은 지망생들의 자서전을 읽어내려가더라도 눈이 멈출 수밖에 없는 구간이 있다. 누구든 존재하는 그 구간은 아픔이 담겨서 꾹꾹 담은 감정들이 있다. 어떤 이는 잘 빗겨서 쓰기로 하고 어떤 이는 정면으로 적나라한 기술로 당혹감을 준다. 읽으려 노력한다. 적어도 내가 수업 때에 피해야 할 말을 알 수 있으려면 읽어야 좋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구간은, 글로만 전달할 수밖에 없는 그 구간은 이 사람이 연기를 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동기가 되곤 한다.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으로라도.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이들은 하나같이 어떤 상처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경중에 대하여 논하자면 끝도 없을 일이지만, 각자의 인생에서 지녀야 할 상처의 모양은 다 다른 것이기에 나는 내 수업을 듣는 이들의 편에 마땅히 서야 할 이유가 있다.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위로라는 어쭙잖은 무드를 조성하거나 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다고 말한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인물에게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담담하게 상처를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서전을 투명 홀더에 넣고 가방 지퍼를 닫으며, 나는 이들의 편에서 힘이 되는 사람이길 다짐한다. 함부로 타인에게 상처 내는 무례한 세상과 현실 속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하고 싶다. 다짜고짜 키를 들먹이며 배우가 안될 것처럼 말하는 사랑 앞에서 당당하게, 무례를 무안하게 만들 실력을 갖추도록 하고 싶다. 몸매가 어쩌네 하는 소리 찍소리도 못하게 하고 싶다. 이들의 다음 자서전에 마음 아픈 일이 적기를. 항상은 아니더라도 더러 안녕하면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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