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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은 속초

이진성
  • 입력 2023.11.13 19:48
  • 수정 2023.11.1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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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3. 18:22.

일출은 동해로 보러 가고 일몰은 서해로 보러 가는 일이 보통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한 친구와 해 지는 것을 보는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른 반론을 들었다. 동해로 노을을 보는 것이 더 멋지다고. 나는 본능적인 반문을 했고 갑론을박 끝에 내가 직접 보고 오기로 했다.

우연한 기회로 숙소를 동해안의 속초로 잡았고 낙조의 시간이 되었다. 해는 영랑호에 윤슬을 떨구고 울산바위를 향해가고 있었다. 호수의 물비늘을 등지고 수평선을 봤다. 운이 아주 좋게도 바람이 많이 붙어서 구름도 없는 날이었다. 수평선 끝에는 어둑해지고 하늘의 그라데이션은 점차 채도가 높아졌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떠올랐다. 멀리서 다가오는 저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시간.  어둑해 지는 하늘과 수평선도 어디가 구분선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시간. 우주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시선은 밝은 쪽으로 가서 설악산 뒤로 지는 하늘까지 훑었다.

인정해야겠다. 해가 지는 것은 동해가 더 멋졌다. 내 주관, 내 취향을 기준으로 더 아름다웠다.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보여줘야겠다고 머리통에 적어뒀다. 해를 볼 필요는 없는 거다. 해가 지는 쪽을 볼 필요도 없는 거다. 사실 달도 별도 스스로 빛나지 않는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여 아름답다고 느꼈던 걸까.

그걸 보면 나도 분석적인 타입은 아니다. 아름답다고 느낀 마음에서 깊게 어떤 파동을 주는지는 몰랐으니까. 오직 스스로 빛을 내는 건 LED 뿐이다. 지구도 태양으로 빛이 난다. 이제는 해가 비주는 곳을 봐야겠다. 해를 등지고 서봐야겠다. 자외선 때문에 뒤통수에 탈모가 올 수도 있지만, 그동안 몰랐던 아름다움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자세히 볼 수도 오래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태주의 풀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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