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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불이현= 국내성= 울尉야암성= 울씨尉氏 현=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개봉시 북쪽이 지금도 하남성 [중모中牟현]= [추모왕鄒牟王= 주몽]의 [모牟]. 코리아 한자漢字 (7)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111)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11.1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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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개토왕 비문은 [주몽]이나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鄒牟王]이 고구려의 시조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추모왕鄒牟王]의 출생을 扶餘(부여)가 아니라 夫餘(부여)로 표기했다. 出自 北夫餘

 

일연의 [삼국유사 고구려조], 이승휴의 [제왕운기 하권] 모두 단군의 아들 이름은 [부루夫婁] 라고 하면서 [부夫]를 썼다. (부록1)

 

광개토왕 비문은 “비류곡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홀본忽本]은 [비류곡沸流谷]과 가까이 있다.

 

[홀본忽本] 은 [일본日本]과 대응된다.[ 일본日本]이 문자 그대로 [해=SUN]의 본거지 이듯이 [홀본忽本]은 [홀忽]의 본거지이다. [홀忽]은 마을의 뜻으로 쓰였음이 확실하다. 모든 마을의 본거지 [홀본忽本]은 [서울=도읍 =capital] 이다. [국내성]이나 [홀본忽本]이나 모두 ‘서울’이다.

 

지금 코리아 인천시에 [彌鄒忽(미추홀)] 구가 있다. [彌鄒忽(미추홀)]에 [추모왕鄒牟王= 주몽]의 [추鄒]가 들어 있다.

 

신라의 13번째 왕인 [미추왕未鄒王=미추니질금(未鄒尼叱今. 삼국유사) = 미추이사금(味鄒泥師今. 삼국사기. 재위: 262년 ~ 284년)]에도 [추鄒]가 들어 있다. (부록1)

 

[비류곡沸流谷]의 [沸] 는 [氵(삼수변 수) + 弗(아닐 불)]이다. 비,불,배로 읽는다. 기원전 7세기에 ‘비’로 읽었기 보다는 한자의 제자 원리상 ‘불’로 읽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비류곡]이 아니라 [불류곡]인 것이다. (부록2)

 

惟 昔 始祖 鄒牟王 之 創基也. 出自 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郎. (중략)

造渡 於 沸流谷 忽本 西 城山上 而 建都焉.

 

2. [추모왕鄒牟王] 의 [추鄒]를 보자.

 

1) 차이나 역사책의 설명은 [주邾나라]가 [추鄒나라]와 같다는 설명이 주를 이룬다.

 

기원후 100년 경 편찬된 [한서-지리지] [강하군江夏郡]에 한 글자 [주邾] 현이 있다. 차이나의 [바이두 백과]는 [주邾] 현을 지금의 무한시로 본다. (湖北省 武汉市 新洲区 邾城)

 

무한시 동북 교외에는 [주가호朱家湖] 라는 호수가 있고, [강하군江夏郡] 소속 [악鄂현]과 이름이 같은 도시, 지금의 [악주시鄂州市]가 무한시 바로 동쪽에 있어 지금의 무한시가 [주邾나라]였음은 확실하다.

江夏郡,縣十四:西陵,竟陵,西陽,襄,邾,軑,鄂(악),安陸,沙羨,蘄春,鄳,雲杜,下雉,鍾武。

 

2) [주邾]는 나라 이름 외에는 달리 쓰이는 글자가 아니다. [朱(붉을 주) + ⻏(우부방 읍)]이다. [주朱]는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의 [주朱]이다.

 

[주몽朱蒙] 은 [주朱] + [몽蒙] 이다. [몽蒙]은 [몽고蒙古]의 [몽蒙] 이다.

 

기원후 100년 경 편찬된 [한서-지리지] [량국梁國. 注 하남군에 한 글자 량梁 현이 있다.]에 한 글자 [몽蒙] 현이 있다. 차이나는 [몽蒙] 현을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 양원구 河南 商丘市 梁园区 로 비정하고 있다.

梁國,縣八:碭,甾,杼秋,蒙,已氏,虞,下邑,睢陽。

蒙县 - 百度百科. 地理位置:今 河南 商丘市 梁园区 北

 

3) [주邾나라]가 있는 호북성 무한시에서 [추鄒나라]가 있는 산동성 [추성시鄒城市] 까지는 현대 고속도로 거리로 736㎞ 이다. 고구려 주몽 씨족이 무한시에서 추성시로 이동했다고 가설을 세워 볼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고구려 건국 세력이 차이나 대륙 북서부에서 남동으로 이동하면서 [주邾나라]와 [추鄒나라]를 세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4) [추鄒나라] 의 [추鄒] 가 들어간 [한서- 지리지] 현이 두 개가 있다. [교동국膠東國 추노鄒盧현]과 [제남군濟南郡 추평鄒平현]이다.

 

[교동국膠東國 추노鄒盧현]은 산동성 래서시 동북방으로 소개되고 있다. 山东 莱西市 东北二十里 周格庄乡 东南 古城里

 

[제남군濟南郡 추평鄒平현]은 현재 산동성 빈주시 소속 추평시로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邹平市,山东省辖 县级市,由滨州市 代管,

 

5) 한편 [추鄒]와 같은 글자로 [바이두-추국鄒國]이 소개하는 [추騶]가 들어간 현도 2개가 있다. 한 글자 [노국魯國]의 [추騶] 현과 [서하군西河郡]의 [추우騶虞] 현이다.

 

[노국魯國]의 [추騶] 현은 [산동성 추鄒성시]로 비정하고 있다. 山東 鄒城市 東南 二十六里. 글자가 다르지만 같은 나라로 인식한다는 [바이두 백과]의 설명이다.

 

[서하군西河郡]의 [추우騶虞] 현의 위치에 대해서는 [차이나 바이두백과]의 직접 설명은 없으나 서하군 소속 [곡라穀羅] 현이 [어얼둬쓰] 시로 비정됨으로 [추우騶虞] 현도 인근 내몽고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부록3)

 

穀羅 : 内蒙古 准格尔旗 西南. [준거얼(준격얼)] 기 (코리아의 시, 군에 해당)은 내몽골 자치구 [어얼둬쓰] 시의 현급 행정구역. 산서성 삭주시와 내몽고 [후허호트] 시, [어얼둬쓰] 시가 삼각형 모양이며 [준거얼] 기는 삼각형 안에 있다.

 

西河郡,縣三十六:富昌,騶虞,鵠澤,平定,美稷,中陽,樂街,徒經,皋狼,大成,廣田,圜陰,益闌,平周,鴻門,藺,宣武,千章,增山,圜陽,廣衍,武車,虎猛,離石,穀羅,饒,方利,隰成,臨水,土軍,西都,平陸,陰山,觬是,博陵,鹽官。

 

3. “ [추鄒나라]는 맹자의 고향이다.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책봉한 제후국으로 순임금의 후손인 姚姓(요성)이 세웠다. 춘추시대에는 邾(주), 또는 邾屢(주루)라고 불렸다.(중략) [추鄒나라]는 [노魯나라]의 속국이었다. [楚(초)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황태현의 '孟子'와 함께하는 한자 산책 <126> 鄒與魯鬨 추나라가 노나라와 싸웠다. 국제신문 2014-06-27)

 

[邾(주), 또는 邾屢(주루)] 가 [鄒나라]와 같은 것이라고 소개하는 글이 많다. 이는 좀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부록4)

 

[주루邾屢]는 동이족 국가에서 많이 나오는 [루屢]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군의 아들 이름이 [부루夫婁]이다.

 

4. [추鄒나라]가 맹자의 고향이고, [노魯나라]가 공자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然友 之 鄒 問 於孟子. 연우가 추나라로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然友 復之 鄒 問 孟子. 연우는 다시 추나라로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맹자 등문공 상.https://leeza.tistory.com/566)

 

鄒與魯鬨. 穆公問曰 (후략) 추나라가 노나라와 전쟁을 했다. 추 목공이 말했다.

鬨, 胡弄反. 勝, 平聲. 長, 上聲, 下同.

鬨, 鬪聲也. 穆公, 鄒君也. 홍(鬨)은 싸우는 소리다. 목공은 추나라 임금이다.( 맹자 양혜왕 하 – 12 https://leeza.tistory.com/430 )

 

5. 지명으로만 보면 차이나 대륙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해를 쫓아 이동한 민족들이 원주민들과 때로는 융합하며, 때로는 적대시하며 살아온 것으로 추정한다. 고구려 건국과 관련하여서는 서북에서 동남으로 이동하면서 건국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미 동남으로 이동하여 문명 국가를 운영하는 상태에서 고구려가 부여에서부터 분화되어 나갔다면 주몽의 고구려와 졸본부여의 출발점은 지금의 산동성일 수 있다.

 

고조선과 은나라를 이어받은 부여가 차이나대륙 전역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가 대륙 동남쪽인 산동성 지역에서 건국하여 서북과 동북으로 다시 진출하면서 부여의 모든 영역을 이어받았다는 가설이 가능한 것이다.

 

6. 전호에서 소개한 대로 삼국사기의 기록 즉 [국내성]=[위야耶(나那)암성]=[낙랑군 불이현]을 계속 추적해보자.

 

[국내國內] = [국國] + [내內] 이다. [국國] 은 ‘나라’,‘서울’로 사용된다. [내內] 의 음가는 [야耶] 보다는 [나那]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내內]는 내,납,예 3가지로 읽는다. 나라의 서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으로 ‘내’로 읽는 것이 맞다고 본다. [국내國內] 는 두 글자로 ‘서울’을 표시한 것이다. (부록5)

 

7. [위야(나)암성尉耶(那)巖城]을 살펴보자.

 

1) [위야(나)암성尉耶(那)巖城]= [위야(나)尉耶(那)] + [암巖] + [성城]이다.

[위야(나)尉耶(那)]에서 [尉]를 ‘위’로 읽으면 [윗 땅, 윗 사람의 땅, 王(왕)의 땅]으로 ‘서울’을 말하게 된다.

 

2) [암巖]은 험한 바위를 말한다. 한편 [험險]은 險 험할 험, 검소할 검, 낭떠러지 암 세 가지로 읽힌다. [낭떠러지 암險] = [암巖]과 사실상 같은 글자이다. [위야(나)尉耶(那)] + [암巖] = [왕王] + [험險] 이다. 고조선의 ‘서울’인 [왕험王險]이다. (부록6)

 

3) [위야(나)尉耶(那)]에서 [尉]를 ‘울’로 읽으면 많이 달라진다. [위尉]는 위, 울 두 가지로 읽는다. [위尉]는 부수는 寸 (마디촌)이고 [寸(마디 촌) + 尸(주검 시) + 示(보일 시)]로 구성되어 있다. ‘벼슬’의 뜻으로 읽을 때는 ‘위’로 읽으며, ‘성씨’나 ‘다리미’로 읽을 때는 ‘울’로 읽는다. (부록7)

 

4) 기원후 약 100년에 편찬된 [한서-지리지] [진류군陳留郡]에 [울씨尉氏현]이 있다. [울씨尉氏현] 은 지금도 이름이 변함이 없다. 지금의 황하 남쪽 하남성 개봉시에 있다.

 

尉氏县,隶属 河南省 开封市。位于 豫东平原,东邻 通 许县、扶沟县,南 与鄢陵 县、长葛市 接壤,西 与新郑市 交界,北 与祥符区、中牟县 相连。

 

주목할 것은 [울씨尉氏현]이 [중모현中牟县] 과 붙어 있다는 것이다.

[중모현中牟县]의 [모牟]는 [鄒牟(추모)왕= 고구려시조 주몽]의 [모牟]이다.

 

[한서-지리지] [진류군陳留郡]에 [울씨尉氏현]이 있다.

[한서-지리지] [하남군河南郡]에 [중모中牟현]]이 있다.

 

5) [일본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아무 생각없이 [위나암성尉那巖城]으로 읽고 있는데 이를 [울야암성尉耶巖城]으로 읽고 위치가 어디인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울야암성=국내성=낙랑군 불이현],

[울야암성尉耶巖城]=[울야尉耶=울씨의 땅]=[울씨尉氏현]=지금의 개봉시,

[울씨尉氏현= 지금의 개봉시]에 북쪽으로 붙어 있는 지금의 정주시 소속 [중모현中牟县] 옛 이름 그대로다.

 

고구려의 첫 서울 국내성은 현대 압록강변 [집안集安 시]가 아니라 황하 남쪽 낙양시 동쪽 지금의 정주시 일대가 된다!

 

서에서 동으로 가면서 낙양시-정주시-중모현-개봉시이다. 중모현 남쪽에 울씨현이 있다. (계속)

 

陳留郡,縣十七:陳留,小黃,成安,寧陵,雍丘,酸棗,東昏,襄邑,外黃,封丘,長羅,尉氏,傿,長垣,平丘,濟陽,浚儀。

 

河南郡,縣二十二:雒陽,滎陽,偃師,京,平陰,中牟,平,陽武,河南,緱氏,卷,原武,鞏,穀成,故市,密,新成,開封,成皋,苑(온, 울, 원)陵。梁,新鄭。

 

부록 1 미추왕 죽엽군(未鄒王 竹葉軍)

제13대 미추니질금(未鄒尼叱今) 미조(未祖) 또는 미고(未古)라고도 한다.은 김알지(金閼智)의 7세손이다. 대대로 현달하였고 또한 성덕(聖德)이 있었으므로 첨해(沾解)의 자리를 물려받아 비로소 왕위에 올랐다 지금 왕의 능을 속칭 시조당(始祖堂)이라 한다.대개 김씨로써 처음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후대 김씨 왕들이 모두 미추를 시조로 삼았으니 마땅하다. 왕위에 오른 지 23년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능은 흥륜사(興輪寺) 동쪽에 있었다.[삼국유사 권1 기이 제일(紀異 第一) 미추왕 죽엽군(未鄒王 竹葉軍)]

 

부록2

沸 비,불,배. 끓을 비, 용솟음칠 불, 어지럽게 날 배. 부수氵[水,氺] (삼수변)

氵(삼수변 수) + 弗(아닐 불)

(끓을 비) 끓다. 끓이다. 들끓다. 분분히 일어나다. 샘솟다. (물이)솟아오르다. 끓는 물

(용솟음칠 불) 용솟음치다(湧----: 물 따위가 매우 세찬 기세로 위로 나오다). (물을)끼얹다. 뿌리다. 거세게 이는 물결 소리. 샘솟는 모양

(어지럽게 날 배) 어지럽게 날다

 

洶(용솟음칠 흉) 湧(물 솟을 용) 湯(끓일 탕, 물 세차게 흐를 상, 해돋이 양) (끓을 비)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弗(불)이 합(合)하여 이루어짐.

fèi, fú (fèi)

boil, bubble up, gush.

沸波 불파. 물수리. 수릿과의 새.

 

부록3

추우(騶虞)는 명사수, 즉 활쏘는 사람의 웃사람, 또는 복수로 활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시경 소남 추우 시경 召南騶虞. : 모솔 리 )

 

추우(騶虞)는 추오(騶吾)라고도 하는데 《산해경(山海經)·해내북경(海內北經)》에 나오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騶虞(추우)-사냥터의 관리- : 열국연의)

 

부록4

1. “「단군기(壇君紀)」에는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의 딸을 맞이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고 하였다.’고 되어 있다.”

壇君記 云 “産子 名曰 夫婁”, 夫婁 與 朱蒙 異母 兄弟也. [삼국유사 고구려조]

 

『단군본기(檀君本紀)』에 이르기를, “비서갑(非西岬)의 하백(河伯)의 딸과 혼인하여 사내아이를 낳고 부루(夫婁)라고 이름을 지었다.”라고 되어 있으며, 『동명본기(東明本紀)』에 이르기를, “부여왕 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아들을 얻기를 구하였다.

檀君本紀曰, “與非西岬河伯之女婚而生男, 名夫婁.” 東明本紀曰, “扶餘王夫婁, 老無子, 祭山川, 求嗣.[제왕운기 하권]

 

2. 邾 주

중국(中國) 고대(古代) 주(周)나라 때에 무왕(武王)이 조협(曹挾)을 봉(封)하여 준 나라.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추(鄒)로 고침.

 

邾县

古县名,秦置。东晋末废。治今 湖北省 武汉市 新洲区 邾城。

 

차이나 역사책 [세본世本]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조안曹安]을 [주邾]에 봉했다. 다른 차이나 역사책 [춘추- 공양전 春秋-公羊传]에 의하면 [주邾] 는 세 개의 나라로 나뉘어졌다. 邾国、小邾国 和 滥国

 

[춘추], [좌전]에 [주邾] 가 나온다. [국어·정어]와 [맹자]에 [추鄒]가 나온다. [사기]·[한서-지리지]에 [騶(추)] 가 나온다. 발음은 같은데 글자가 다르다. 기실 모두 같은 일이다. [주邾 나라] 는 [주루邾婁국]이라고도 불리웠다.

 

《春秋》《左传》中写作“邾”;在《国语·郑语》《孟子》中写作“邹”,在《史记》《汉书·地理志》中写作“驺”。音同而字异,其实皆一事。邾国,亦称邾娄国,历史典籍多有记载。《汉书·地理志》:“故邾国,曹姓,二十九世为楚所灭”。

相传 黄帝之孙 颛顼后裔陆 终娶于 鬼方氏 妹,名曰 女嬇,生有 6子,第5子名 曹安,为 曹姓之祖。周武王 灭 商后,封曹安 后人挟 于邾,史称 “邾挟朱挟)”或“ 曹挟”,为 邾国 开国 君主。 [5]《世本》 称邾侠,后世亦称曹挟

 

3. 한서지리지 원문 등

魯國,戶十一萬八千四十五,口六十萬七千三百八十一。縣六:魯,卞,汶陽,蕃,騶,薛。

 

江夏郡,戶五萬六千八百四十四,口二十一萬九千二百一十八。縣十四:西陵,竟陵,西陽,襄,邾,軑,鄂,安陸,沙羨,蘄春,鄳,雲杜,下雉,鍾武。

 

梁國,戶三萬八千七百九,口十萬六千七百五十二。縣八:碭,甾,杼秋,蒙,已氏,虞,下邑,睢陽。

 

西河郡,戶十三萬六千三百九十,口六十九萬八千八百三十六。縣三十六:富昌,騶虞,鵠澤,平定,美稷,中陽,樂街,徒經,皋狼,大成,廣田,圜陰,益闌,平周,鴻門,藺,宣武,千章,增山,圜陽,廣衍,武車,虎猛,離石,穀羅,饒,方利,隰成,臨水,土軍,西都,平陸,陰山,觬是,博陵,鹽官。

穀羅 : 内蒙古 准格尔旗 西南

 

3. 맹자

然友 之 鄒 問 於孟子. 연우가 추나라로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然友 復之 鄒 問 孟子. 연우는 다시 추나라로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맹자 등문공 상.https://leeza.tistory.com/566)

 

鄒與魯鬨. 穆公問曰 (후략) 추나라가 노나라와 전쟁을 했다. 추목공이 말했다.

鬨, 胡弄反. 勝, 平聲. 長, 上聲, 下同.

鬨, 鬪聲也. 穆公, 鄒君也. 홍(鬨)은 싸우는 소리다. 목공은 추나라 임금이다.

( 맹자 양혜왕 하 – 12 https://leeza.tistory.com/430 )

 

鄒與魯鬨. 穆公問曰: “吾有司死者三十三人, 而民莫之死也. 誅之, 則不可勝誅; 不誅, 則疾視其長上之死而不救, 如之何則可也?”

추나라가 노나라와 전쟁을 했다. 추목공이 말했다. “나의 관리 중에 죽은 이가 33명인데 백성들은 구해주질 않았습니다. 백성들을 죽이자니, (너무 많아) 다 베어버릴 수 없고, 죽이지 않자니 관리들의 죽음을 아니꼽게 보며 구하질 않으니,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 제나라의 기사는 「양혜왕」하11에서 끝난다. 그리고 그는 일단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고향인 추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송(宋)에서 당분간 머문 것으로 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엔 설(薛)에서 아주 짧게 체재한 후 자기 고향인 추(鄒)로 돌아간 것이다. 등(滕), 노(魯)는 추나라에서 멀지 않은 소국이며, 이 작은 나라는 이미 현실적인 천하통일의 왕도의 가능성이 없는 나라들이다. -『맹자, 사람의 길』, 213쪽

부록5

國 국. 나라 국. 부수 囗 (큰입구몸). 囗(나라 국) + 或(혹 혹)

나라, 국가(國家). 서울, 도읍(都邑). 고향(故鄕). 고장, 지방(地方). 세상(世上), 세계(世界).(나라를)세우다

(나라 국) 邦(나라 방)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백성들( ☞ 口)과 땅( ☞ 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 ☞ 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함.

guó (guó)

nation, country, nation-state.

 

內 내,납,예. 안 내, 들일 납, 장부 예. 부수 入 (들입). 入(들 입) + 冂(멀 경)

(안 내) 안, 속.나라의 안, 국내(國內). 대궐(大闕), 조정(朝廷), 궁중(宮中). 뱃속. 부녀자(婦女子). 아내.몰래, 가만히.비밀히(祕密-).중(重)히 여기다, 친하게 지내다

(들일 납)들이다(≒納).받아들이다.살찌다.

(장부 예) 장부(나무 끝을 구멍에 맞추어 박기 위하여 깎아 가늘게 만든 부분). 두 강물이 합치는 곳

 

汭 (물굽이 예)

토담집 따위에 들어가는 일, 멀경몸(冂 ☞ 경계, 성곽)部는 여기에서는 나중에 갓머리(宀 ☞ 집, 집 안)部로 쓰는 것으로서 궁전(宮殿)이나 집을 나타냄. 궁전(宮殿)이나 집에 들어가는 일. 어느 범위(範圍) 안으로 들어감의 뜻. 들어감, 안쪽의 뜻.

(nèi)

inside, interior. domestic.

 

洞內坊內 동내방내. 동네방네(洞-坊-)의 원말. 온 동네. 또는 이 동네 저 동네. 海內 해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陸地)라는 뜻으로, 「나라 안」을 일컫는 말.

 

부록6

險 험, 암

險 낭떠러지 암. 모양자 阝(좌부변 부) + 僉(다 첨)

巖 바위 암. 모양자 山(메 산) + 嚴(엄할 엄). 8. 험하다(險--)

뜻을 나타내는 뫼산(山 ☞ 산봉우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嚴(엄 ☞ 엄숙하다 ☞ 험하다→암)으로 이루어짐. 험한 산→바위의 뜻으로 쓰임.

嚴 엄할 엄. 모양자 吅(부르짖을 훤) + (험준할 음)

厳(엄)의 본자(本字). 뜻을 나타내는 입구(口 ☞ 입, 먹다, 말하다)部와

敢(감 ☞ 억지로 무엇인가 하다→엄하다),

민엄호(厂 ☞ 굴바위, 언덕)部로 이루어진

(엄)은 험한 산봉우리, 吅(훤)은 바위가 널린 모양, 바위가 많이 널린 험한 산→엄하다.

험준할 음. 부수 厂 [⺁] (민엄호ㆍ민엄호밑). 厂(기슭 엄) + 敢(감히 감)

험준하다(險峻--). 땅의 이름

(음)의 속자(俗字).

厂(기슭 엄) + (-) + 二(두 이) + 月(달 월) + 殳(몽둥이 수)

(음)의 본자(本字).

殳 몽둥이 수. 부수 殳 (갖은등글월문, 4획). 几(안석 궤) + 又(또 우)

몽둥이. 나무 지팡이. 창(槍) 자루(끝에 달린 손잡이). 날 없는 창(槍: 무기의 하나). 서체(書體)의 이름. 갖은등글월문(-----文: 부수(部首)의 하나)

쓰임으로만 본다면 攴(칠 복)자와 큰 차이가 없다

손에 나무 몽둥이를 든 모양을 본떠, 「차다, 때리다, 부수다」 등을 뜻함.

shū (shū)

name of old weapon. kill. rad. 79.

殳書 수서 .고전(古篆) 팔체(八體)의 하나. 옛날 병기(兵器) 위에 썼음.

戈殳 과수. 창(槍).

殳矜 수근. 창의 자루.

殷 은,안. 성할 은/은나라 은, 검붉은빛 안. 부수 殳 (갖은등글월문, 4획)

殳(몽둥이 수) + 㐆(돌아갈 은)

慇(은)과 통자(通字). 뜻을 나타내는 갖은등글월문(殳 ☞ 치다, 날 없는 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떨치다」의 뜻( ☞ 震진)을 나타내기 위한 身(신)으로 이루어짐. 무기(武器)를 들고 「성대하게 춤추다」, 바뀌어 「성하다」의 뜻.

 

㐆 은,의. 돌아갈 은, 돌아갈 의. 부수 丿 (삐침별)

戶(집 호) + 一(한 일) + (-)

yǐn (yǐn)

(corrupted form) to follow, to trust to. to put confidence in. to depend on, to turn around. to turn the body, (interchangeable 隱).

 

 

那 어찌 나, 어조사 내. (國內城(국내성)의 내). 부수 ⻏ [邑] (우부방).

刀(칼 도) + 二(두 이) + ⻏(우부방 읍)

(어찌 나) 어찌.어찌하여.어찌하리오. 내하오(어떠하냐).어느.어떤.저(≒彼).많다. 편안하다(便安--)

(어조사 내) 어조사(語助辭)

何(어찌 하/꾸짖을 하/멜 하) 奈(어찌 내, 어찌 나) 豈(어찌 기, 개가 개)

那자는 ‘어찌’나 ‘어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那자는 冄(나아갈 염)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冄자는 양 갈래로 늘어트린 머리칼과 수염을 그린 것으로 서역에 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서역 남자들의 머리칼과 수염을 특징지어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邑자가 결합한 那자를 풀이하기 위해선 중국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어에서 那자는 ‘저것’이나 ‘저것들’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那자에서 말하는 ‘저것들’이란 변방 지역에 살던 서역인이라는 뜻이다.

 

서역 남자를 특징지어 그린 冄자에 邑자를 결합해 성 밖에 살던 서역인을 지칭하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다만 우리말에서는 ‘어찌’나 ‘어떤’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冄 나아갈 염. 부수 冂 [⺆] (멀경몸). 冂(멀 경) + 二(두 이)

나아가다.부드럽다, 약하다(弱--).침범하다(侵犯--).위태롭다(危殆--). 귀갑(龜甲)의 가장자리.풀이 무성(茂盛)한 모양.수염이 흔들리는 모양

冉(염)의 본자(本字).

- (rǎn)

tender. weak. gradually alterrrrating.

 

낙랑군 남감현 䛁邯縣 〔三〕 孟康曰:「䛁音男。」師古曰:「䛁音 乃甘反。邯音酣。」 남감현을 염감현으로 바꾸어 읽어야. 당나라 때 이미 위치가 이동되었음. 冄 은 수염이 흔들리는 모양. 서역인을 말하고, 䛁 은 현의 이름이라는 설명을 따르면 서역인들이 들어와 수다를 떠는 모습을 연상하면 됨. [조선]의 원류는 서역인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됨. 낙랑 역시 지금의 섬서성, 산서성 북부 지역이었을 것임.

 

䛁 염,남. 수다스러울 염, 수다스러울 남. 부수 言 [訁,讠] (말씀언)

言(말씀 언) + 冄(나아갈 염)

(수다스러울 염) 수다스럽다. 현(縣)의 이름

(수다스러울 남) 수다스럽다. 재잘거리다

 

부록7

離(리), 利(리), 李(리) =夷(이)= 인가?

尉 위,울. 벼슬 위/위로할 위, 다리미 울. 부수 寸 (마디촌)

寸(마디 촌) + 尸(주검 시) + 示(보일 시)

(벼슬 위/위로할 위) 벼슬. 벼슬의 이름. 편안(便安)히 하다.위로하다(慰勞--)

(다리미 울) 다리미.성(姓)의 하나.본성(本性). 다리다. 다리미로 주름을 펴다

 

火(화 ☞ 다리미)와 寸(촌 ☞ 손)과 尼(니)의 합자(合字). 손에 다리미를 들고 헝겊에 댄다는 뜻. 전(轉)하여 「누르다」의 뜻. 못된자를 누른다는 뜻에서 군대(軍隊) 장교의 뜻으로 쓰여짐.

 

wèi, yù, yùn (wèi)

officer, military rank.

 

駙馬都尉 부마도위 임금의 사위에게 주던 칭호(稱號).

부마도위란(駙馬都尉)란 원래 한나라(漢--) 때 설치된 직책(職責)으로, 처음에는 단순히 황제(皇帝)가 타던 부마(駙馬:副車의 말)를 맡아본 직책(職責)에 불과했다. 그것이 위(魏)ㆍ진(晉) 이후로 공주의 남편(男便) 되는 사람에 한해 이 벼슬을 줌으로써 임금의 사위를 부마(駙馬)라 부르게 되었다.

 

부록 8 울야암성과 서울

1. 徐菀 서울 徐 천천히 할 서 菀 무성할 울

[借(차차어)] 서울. 수도(首都). 서울〔徐羅伐〕은 본디 경주(慶州)의 옛 이름인데, 경주가 오랜 동안 신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與猶堂全書 補遺, 題 雅言覺非後, 淵泉籤示》

長安洛陽……慶州古亦號徐菀, 自新羅建都以後, 遂爲京都之稱, 今人只知漢陽爲徐菀, (네이버 한자 사전 徐菀)

 

서벌, 서나벌에서 ‘서徐’의 메인 글자는 여余 이고 이는 夫餘(부여)의 여餘와 혼용되고 있다.

 

2. 徐 천천히 할 서. 부수 彳 (두인변). 彳(조금 걸을 척) + 余(나 여)

천천히 하다. 평온하다(平穩--), 조용하다. 다, 모두. 천천히. 고을의 이름. 나라의 이름

 

徐자는 ‘천천히 하다’나 ‘평온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徐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余(나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余자는 나무 위에 지어진 집을 그린 것으로 ‘나’나 ‘나머지’라는 뜻이 있다.

 

徐자는 이렇게 ‘나머지’라는 뜻을 가진 余자에 彳자를 결합한 것으로 ‘천천히 걷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徐자는 余자에 있는 ‘나머지’라는 뜻을 ‘여유’로 해석해 ‘길을 천천히 걷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徐자는 쓰임이 적어 간혹 지명이나 인명에서만 볼 수 있는 글자이다.

 

xú (xú)

slowly, quietly, calmly. composed, dignified.

徐 성(姓)의 하나.

徐徐 서서(히) 천천히.

 

3. 余 여. 나 여/남을 여. 부수 人 [亻] (사람인, 2획)

모양자 (사람 인) + 于(어조사 우) + 八(여덟 팔)

나. 나머지(≒餘). 나머지 시간(時間). 여가(餘暇). 여분(餘分). 정식 이외

다른. 남다. 남기다

 

余 자는 ‘나’나 ‘남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余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余자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 위에 오두막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余자는 나무 위의 ‘오두막’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후에 ‘나’나 ‘나머지’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餘(여)의 약자(略字). 나무로 지붕을 받친 작은 집의 모양을 본뜸. 그 음(音) 빌어 自稱代名詞(자칭대명사) 나로 쓰고, 또 餘(여 ☞ 나머지)와 통하여 쓰임.

yú, tú, xú, yù (yú)

I, my, me. surname. surplus.

余 여 여(予). 나. 성(姓)의 하나.

余月 여월. 음력(陰曆) 4월.

 

4. [한서 지리지] [하남군 울苑 현] 苑 원,울. 나라 동산 원, 막힐 울. 부수 艹 [艸,䒑,艹,艹] (초두머리, 3획). 艹(초두머리 초) + 夗(누워 뒹굴 원)

 

부록9 徐巿 서불

巿 슬갑 불. 부수 巾 (수건건). 巾(수건 건) + 一(한 일)

슬갑(膝甲: 바지에 껴 입는, 무릎까지 닿는 가죽옷). 앞치마. 초목(草木)이 무성(茂盛)한 모양.무성하다(茂盛--)

제후(諸侯)들이 찬 습갑의 모양을 본뜬 글자.

fú, pó (fú)

revolve, make circuit, turn.

 

徐巿 서불 중국(中國) 진(秦)나라 시황(始皇) 때의 방사(方士). 불로장생약(不老長生藥)을 구(求)하려고 삼신산(三神山)에 갔다고 함.

 

市 저자 시. 부수 巾 (수건건). 모양자 巾(수건 건) + 亠(돼지해머리 두)

 

불(弗·不·市)·부루(夫婁)·불류(沸流)·부여(夫餘·扶餘)·부리(夫里)·비리(卑離) 등으로 표현되었고, 또한 ‘赤·朱·陽·不兒·負兒·佛’의 한자음이 모두 불에서 온 것이다. 즉, 하늘에서 태양신이 ‘밝’인데 인간에 강림한 산을 한밝산(太伯山)이라 함이니, 그 밝신은 주로 산에 깃들인다.

 

그러므로 상고의 우리 겨레가 모여 사는 곳에는 그 밝신을 모신 신산이 있으니, 그것이 곧 장백산(또한 한밝산)·백두산·백마산·백룡산·백계산(白鷄山)·대백산(大白山)·대박산(大朴山)·박달산·함박산·백복산·백암산·천백산(天白山)·조백산(祖白山)·비백산(鼻白山) 등으로, 곧 태양신을 모신 신산이다.

 

그리고 겨레도 백민·백족·백의민족(白衣民族)·백이 등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불은 한숫〔桓雄〕이 인간세계에 가져온 것으로서,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 내려준 가장 큰 선물이다. 당시에는 불을 해〔日〕의 분신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고구려 이전의 북부여왕은 천제(天帝)의 강림으로서 자칭 해모수(解慕漱)라고 하였다.

 

⑤ 국명으로 사용되었다.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卞韓)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밝’은 본디 광명을 뜻함인데, 그것이 태양신의 대명사로 쓰였다. 하늘에 있어서는 광명·태양신이 되고, 인간에게 와서는 불〔火〕이 되고, 그것이 다시 겨레가 모여 사는 곳으로 옮겨와서 불·벌(國·原·野·坪 등)이 되었다. 이에 대한 것은 앞으로도 많은 고증이 필요하다. ‘밝’은 한자로 ‘白·伯·朴·百·發·赤·撥·渤·明·貊·狛·望·伏安·朱安’ 등으로 표기되었다.

 

대표로 ‘白’을 살펴보면 백이(白夷)·백민·백족·백두산·백악산·백산·백마산(白馬山) 등이다. ‘伯·朴·百’이 ‘밝’의 표기임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이 우리 백민(白民)·백족(白族)을 그들의 자존심에서 중국 이외의 민족을 이적(夷狄)으로 취급, 백이(白夷, 또는 東夷)라 하고 다시 ‘백(白)’자 곁에 개·사슴 녹(록·시) 등을 붙여서 ‘狛·백·貊’으로 쓴 것이다.

 

근본은 밝민족인 것이다. 발은 또한 밝인데, 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발조선(發朝鮮)·발숙신(發肅愼)이라고 함은 밝족의 나라를 뜻함이다. 명(明)은 밝이니 동명왕이 새밝한이며, 한사군 중에 소명(昭明)이 새밝이며, 신라의 동부 명활산(明活山)이 밝안산인 점 등이 그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한밝사상 (한밝思想)]

 

맥족(貊族). <후한서> <고구려조>에 의하면 구려(句麗)는 일명 맥이(貊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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