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서리가 내렸나 봐요.
호박잎이 축 처져 있는 걸 보면
수풀 속에 숨어 있던
아직은 덜 여문 호박을 찾았어요.
호박을 갈무리했어요.
내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두어 달 동안 혼자 꿈꾸며 익어 갔을 것이어요.
소중함은 스스로 소중한 게 아니라
그 곁에 있는 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소중한 것 같아요.
호박을 베고 잠시 누웠더니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요.
여물어 가는 씨앗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나 봐요.
지난여름 이야기랑 추워지는 날씨 이야기랑
어쩌면 내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요.
호박을 베고 누운 잠깐의 시간은
한여름 저와 호박이 함께 지낸 시간이 압축된 시간인 거예요.
그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이 정이걸랑요.
정이 든다는 것은 서로를 향한 관심이걸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