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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

이진성
  • 입력 2023.11.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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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8.17:47

갑자기 수업을 듣는 친구가 질문을 했다. 하던 연기를 멈추고 '형 그러면 연기할 때에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계속 분석을 생각하나요?'라고 물어왔다. 분석이란 것은 왜 하는지, 전략이라는 것은 왜 세우는지 물어오는 게 보통인데 저런 질문은 나한테 꽤나 참신했다. 그리고 나의 경우 연기를 할 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나의 경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은 별 생각이 없었다. 등장인물은 때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이행해 간다. 물론 그 전략이 꼭 이뤄지진 않는다. 오히려 잘 지켜지지 않아서 다른 전략을 세우곤 한다. 직접 연기할 때에 그런 전략들을 세세하게 다 생각하면서 연기하지 않는다. 연습과정에서 이미 시의 적절하게 몸에 익혀두고 실제 연기를 할 때는 '그냥' 한다. 마치 공을 던지듯이 멀리 향하여 날아간다.

'그냥'이라고 썼지만 사실 강력한 충동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자면 연습된 거푸집을 기반으로 충동을 따라간다.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다. 계획된 일들이나 계산은 있을 수 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연기도 그렇다. 한발 떨어져서 마치 관광하듯이 내 연기를 진행시킨다는 것은 그다지 나에게 재밌는 일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앞 일에 충동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가끔 더욱 재밌는 일이다.

연기는 참 별난 부분에서 인생과 닮았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도, 그저 충동만으로 상황을 겪는 것도 닮았다. 일일이 계산하며 살 수는 없는 게 또 인생 아닐까.

여하튼 나는 수업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충동만 가지고 움직이라고, 잘 못하고 틀려도 되니까 해보라고 연기는 인생과 비슷하지만 또 달라서 다시 하면 된다고 했다. 틀려도 된다. 틀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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