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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진번·진국眞番·辰國]이 [漢(한)나라]에 조공하는 길을 막았다. [漢(한)나라]와 [진번·진국眞番·辰國] 사이에 [위만조선]이 있다. 낙랑은 고조선의 다른 이름 (3)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103)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10.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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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이나 대륙에서 지금의 낙양시 부근을 기준으로 영토의 넓이가 방 사천여리 (地合 方 四千餘里. 후한서)인 곳, 주위의 나라가 복속하여 방 수천리 (皆來服屬, 方 數千里. 사기 조선열전, 한서 조선전)인 지역은 지금의 산동성·산서성·하북성·하남성·강소성 일대 밖에 없다.

 

하북성, 하남성은 황하를 기준으로 북쪽, 남쪽이다. 그런데 황하의 북쪽에 있으면서 하북성이 아니라 하남성에 속하는 도시들이 많이 있다.

 

하북성, 하남성은 산동성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다. 산서성은 말 그대로 山(산)의 西(서)쪽에 있다. 한반도 太白山脈(태백산맥)에 비견되는 차이나 太行山脈(태행산맥)의 서쪽이다.

 

1) [후한서]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중략) 전체 국토의 넓이가 방 4천여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해海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辰國이다.

馬韓在西, (중략) 地合 方 四千餘里, 東西 以海 爲限, 皆 古之辰國 也. 馬韓最大, 共立 其種 爲 辰王

 

2) [사기] 아들을 거쳐 손자孫子 우거右渠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漢나라 망명자亡命者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天子에게 입견入見치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眞番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天子에게 알현謁見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傳子 至 孫右渠, 所 誘漢亡人 滋多, 又 未嘗入見, 眞番旁衆國 欲上書 見天子, 又 擁 閼不通.

 

3) [한서]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漢나라의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天子에게 들어와 조견朝見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진국眞番·辰國이 글을 올려 천자天子를 알현謁見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傳子 至 孫右渠, 所 誘漢亡人 滋多 又 未嘗入見, 眞番·辰國 欲上書 見天子, 又 雍 閼弗通.

 

4) 진번·진국 眞番·辰國

[진辰]은 마한의 동쪽에 있는 [辰韓(진한)] 과 진한 남쪽에 있는 [변한= 변진弁辰]의 [진辰] 이다. [후한서 코리아 한韓 전]에서 명확하게 진국辰國 을 기록하고 있다.

 

[한서]를 따르면 조선의 주위에 진번·진국眞番·辰國이 있었다.

[후한서]를 따르면 옛날 진국古之辰國 은 산동반도의 남양호 등 남사호南四湖 동쪽에서 지금의 일조시, 청도시 등 황해안 까지의 지역을 가리킨다. 東西 以海 爲限

 

2.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기원후 100년경 ‘반고’가 편찬한 역사책으로서 [한서]가 있다. 지리지가 별도로 있다. [한서]에 한漢4군 이름이 처음 나온다.) 는 103개 郡國(군국)을 열거했다.

 

직접 통치를 하는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이 군郡이다. 직접 통치 하지 못하고 지리만 소개하는 제후국을 국國 이라고 보면 된다. 군郡 소속 현에도 그냥 직접 통치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제후국의 준말인 侯國(후국)이라고 표현한 것이 매우 많다.

 

3. [한서] 무제본기에 낙랑·진번·임둔·현도 4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한서] 지리지에는 진번군 임둔군은 없다. 지난 글에서 진번·임둔 은 漢(한)나라의 군郡이 아니라 조선의 군郡일 가능성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한서-지리지의 편찬자는 조선 안에 진번·임둔 이 있음으로 굳이 별도의 군郡으로 소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영토가 워낙 커서 이를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낙랑군이다. 낙랑군의 1번 현이 조선현이다.

 

4. [진번]은 좀 더 소개를 해야 한다. [진번]에 대해서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과 [한서 조선전]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1) 두 역사책 모두 첫 부분에서 [진번]과 [조선]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완전히 다른 나라로 취급한 것이다.

 

[사기] 처음 연燕나라의 전성기全盛期로부터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自始 全燕時, 嘗 略屬 眞番 朝鮮 爲置吏, 築鄣塞. 秦滅燕, 屬 遼東外徼.

 

[한서] 처음 연燕나라 때부터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군리軍吏를 두기 위하여 국경에 성을 쌓았다.

自始 燕時, 嘗 略屬 眞番 · 朝鮮, 爲置吏 築障 秦滅燕, 屬 遼東外徼.

 

2) [진번]과 [조선]을 완전히 구분하는 태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사기]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동遼東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秦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鄣에 살았다. 점차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의 만이蠻夷 및 옛 연·제燕·齊의 망명자亡命者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王이 되었으며, 왕험王險에 도읍을 정하였다.

而 東走出塞, 渡 浿水, 居 秦 故空地 上下鄣, 稍役 屬 眞番·朝鮮 蠻夷 及

故燕·齊 亡命者 王之, 都王險

 

[한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浿水를 건너 진秦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障에 살았다. 점차 진번·조선眞番·朝鮮의 만이蠻夷와 옛 연·제燕·齊의 망명자亡命者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王이 되었으며, 왕험王險에 도읍을 정하였다.

而 東走出塞, 度 浿水, 居 秦故空地 上下障, 稍伇 屬 眞番·朝鮮蠻夷 及

故燕·齊 亡在者, 王之, 都王險.

 

3) [진번]과 [조선]을 완전히 구분하는 태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임둔]도 [진번]과 [조선]옆의 국가임을 기록하고 있다. [위만]의 세력이 성장하면서 [진번], [임둔]이 [조선]에 복속하였음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기 색은]은 [진번], [임둔]이 동이의 작은 나라로서 나중에 (누구의) 군郡이 되었다고 주석을 달았다.【索隱】東夷小國, 後以爲郡.

 

[사기] 이로써 만滿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小邑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眞番과 임둔臨屯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그 영역이]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以故 滿得 兵威財物 侵降 其旁小邑, 眞番·臨屯. 皆來服屬, 方 數千里.

 

[한서] 이로써 만滿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財物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小邑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임둔眞番·臨屯도 모두 와서 복속服屬하여 [그 영역이]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以故 滿得 以 兵威財物 侵降 其旁小邑, 眞番·臨屯 皆來服屬, 方 數千里.

 

4) [사기]는 [眞番旁衆國진번眞番 주변의 여러 나라들]로 기록하고 있으나, [한서]는 [眞番·辰國 진번·진국]으로 명확하게 두 나라를 기록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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