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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조선열전] 주석에 달린 [괄지지]기록으로 찾아본 신라·말갈의 위치. 낙랑은 고조선의 다른 이름 (1)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101)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10.08 20:33
  • 수정 2023.10.0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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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전 100년경 편찬된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에 ‘낙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현도’도 없다. 나오는 것은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뿐이다. 진번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진번’ 부족을 가리키기도 한다. ‘임둔’도 마찬가지다.

 

2.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원문 “(위만의 영역이)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에 달린 주석이 의미심장하다.

[ 그 주변의 소읍小邑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眞番과 임둔臨屯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 [친일 국사편찬위원회]가 번역한 한글 그대로이다. 侵降其旁小邑 眞番·臨屯 皆來服屬, 方數千里.

眞番·臨屯 註 022 【索隱】東夷小國,後以爲郡. 진번임둔에 [사기 색은]이 주를 달았다. 동이의 작은 나라로서 나중에 군郡이 되었다. 진번·임둔은 [위만 조선]의 군郡이 되었는가? 차이나 漢(한)나라의 군郡이 되었는가? 문맥으로는 [위만 조선]의 군郡이 되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다만 사기색은이 편찬된 시기를 생각하면 漢(한)나라의 군郡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以聞, 上許之, 以故 滿 得 兵威財物 侵降其旁小邑, 註 021 眞番·臨屯 註 022 【索隱】東夷小國,後以爲郡. 이로써 만滿 (‘위만’을 ‘사기’는 ‘만’ 한글자로 표기했다) 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小邑註 021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眞番과 임둔臨屯註 022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그 영역이]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皆來服屬, 方數千里.

【正義】括地志云:「朝鮮·高驪·貊·東沃沮五國之地, 國東西千三百里, 南北二千里, 在京師東, 東至大海四百里, 北至營州界九百二十里, 南至新羅國六百里, 北至靺鞨國千四百里.」

 

3. 사기 정의正義에 쓰여있다. 괄지지括地志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正義】括地志云:「朝鮮·高驪·貊·東沃沮五國之地, 國東西千三百里, 南北二千里, 在京師東, 東至大海四百里, 北至營州界 九百二十里, 南至 新羅國 六百里, 北至靺鞨國 千四百里.」

 

1) 조선·고려·맥·동옥저 다섯 국가의 땅이다. 朝鮮·高驪·貊·東沃沮 五國之地

① 어! 차이나 역사책 최초로 (고)조선과 고(구)려가 같이 나온다. [위만]이 세운 ‘조선’의 영토를 설명하는데 [괄지지] 라는 책이 나온 639년 당시 전해 내려온 국가를 나열한 것이다. (고)조선은 고(구)려·맥·동옥저 3개 국가를 모두 다스린 나라라는 의미에서 쓴 것인가. 아니면 (고)조선과 고(구)려·맥·동옥저 3개 국가가 같은 시대에 존재한 적이 있기 때문인가?

 

② 나열한 나라는 조선·고려·맥·동옥저 네 개 국가인데 다섯 국가라고 했다. 어느 나라를 뺀 것인가? 신라인가, 백제인가. 계속되는 문장에 신라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빠져 있다. 왜 뺐을까?

 

2) [위만 조선]의 영토가 동서 천삼백리, 남북 이천리이다. 國東西千三百里, 南北二千里, 차이나 대륙에서 찾아보자. 당나라의 서울 [경사= 지금의 서안시 혹은 낙양시]에서 고조선의 서울은 구백리 떨어져 있다. 동서 천삼백리에서 동쪽으로 지금의 황해까지 4백리를 뺀 거리이다. 國 東西 千三百里. 在 京師 東, 東至大海 四百里,

남쪽으로 [신라]가 있는데 [고조선] 서울에서 6백리 떨어져 있다. 북쪽으로 [말갈]이 있는데 [고조선] 서울에서 1천4백리 떨어져 있다. 6백리와 1천4백리를 합치면 2천리, 그래서 남북으로 2천리라고 했다.

南至 新羅國 六百里, 北至靺鞨國 千四百里.」

 

3) 십리를 5㎞ 로 계산해 보자. 동서가 650㎞ 이고 남북은 1,000㎞ 이다. 산동성 일조시 (황해안)에서 산동성 사수현 (= 역사연구가들이 백제의 사비성이 있던 곳으로 지목하는 도시이다) 까지가 대략 4백리=200㎞ 이다. 사수현인근에는 곡부시 추성시 등이 있다.

 

산동성 사수현 (= 역사연구가들이 백제의 사비성이 있던 곳으로 지목하는 도시이다)에서 당나라 서울 지금의 서안시까지가 885㎞ =천팔백리 이다. 9백리= 450㎞ 인 대도시 는 정주시 (개봉시 서쪽)이다. 정주시에서 서쪽으로 140㎞, 사수현에서 590㎞ 떨어진 곳이 낙양시이다. 650㎞와 590㎞ 는 차이가 크다.

 

4) 1리를 576미터 = 0.576㎞ 로 계산해 보자. 청나라가 들어선 뒤에 척관법이 변경되었다. 이때 1리는 미터법으로 약 500미터였으며, 개정된 척관법에 따라 150장(丈)이고, 1장은 10척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중국에서 1리는 576m에 해당하였으며, 최근 1리를 500m로 공식화하였다. (위키백과 리里)

 

5) 1리를 576미터 = 0.576㎞ 로 계산하면 산동성 일조시 (황해안)에서 사백리=230㎞ 인 곳은 산동성 추성시이고, 산동성 추성시에서 낙양시까지가 524㎞이다. 9백리 * 0.576㎞=518㎞ 이다. 별 차이가 없다.

 

당나라에 항복하고 당나라 서울에서 관리 생활을 한 고구려의 마지막 실력자 [남생]의 묘가 낙양시 북망산에서 발굴되었다. 당나라의 서울은 서안시-낙양시-서안시로 왔다 갔다했다.

 

6) 위 계산에 근거하여 [위만조선]의 서울이 산동성 추성시라고 가정하자. 남으로 신라의 서울까지가 6백리 = 342㎞ 이다. 강소성 회남시까지가 대략 377㎞ 이다. 조선후기 문신 김수홍이 1666년에 그린 천하고금대총편람도(天下古今大總便覽圖) 에 의하면 지금의 회하淮河에 접한 회남시淮南市 팔공산 구八公山 區 바로 북쪽에 慶州(경주)가 있다. (대만은 倭國왜국인가? (2) 에피소드9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91) 2023.08.23.)

南至 新羅國 六百里, 北至靺鞨國 千四百里.

 

7) [위만조선]의 서울이 위 계산으로 산동성 추성시라고 가정하자. 북으로 천사백리 =806㎞ 인 곳에 [말갈]의 서울이 있다. 산동성 추성시에서 북경시 서북쪽에 있는 장가구시 까지 거리가 775㎞ 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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