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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복] [동사강목] [낙랑군고]에서 [차이나 역사책 [한서漢書지리지 주석]에 나온다고 기록한 “우거(右渠)가 도읍한 곳을 군치로 삼았다.” 는 정작 [한서지리지 주석]에는 없다. 에피소드10.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100)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9.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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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글씨 보충의견]으로 나오는 백제가 처음 도읍했다는 [미추홀 :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를 찾다가 삼국사기 권 제37 잡지 제6 지리(地理)四 고구려(高句麗) 평양성과 장안성(427년) 부분에 달린 주(석) 35를 보게 되었다.

 

(전략) 또한 《고려사(高麗史)》에서 백제 시조가 북으로 패강(浿江)을 경계로 삼았고, 당(唐) 황제가 패강(浿江) 서쪽 포구(西浦)에 정박하여 엽전을 깔고 내려 송악군(松岳郡)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후략)

 

이를 [구글]에서 그대로 검색하여

 

"조선후기 패수관련 정리의 끝판왕 안정복. 21C에 패수(浿水)관련 썰 풀려면 나보다는 나아야지"( 다음카페. 배달민족

https://m.cafe.daum.net/shogun/1Db/8418?listURI=%2Fshogun%2F1Db )라는 카페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이 카페 글에서 소개한 대로 [안정복] [동사강목]을 한국고전종합DB에서 찾아보았다.

 

2. [안정복]은 [동사강목 부록 하권 지리고] 중 [낙랑군고]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한서》 지리지에, “낙랑군치(樂浪郡治)는 조선현(朝鮮縣)이다.” 하였는데,

그 주에, “우거(右渠)가 도읍한 곳을 군치로 삼았다.”하였고,

응소(應劭)는, “낙랑은 옛 조선국(朝鮮國)이다.” 하였고,

《통전(通典)》에도, “평양성(平壤城)은 곧 한(漢)의 낙랑군 왕검성(王儉城)이다.” 하였다. ]

 

3. 차이나 역사책 [한서漢書지리지], 낙랑군 단락을 찾아보았다. “우거(右渠)가 도읍한 곳을 군치(= 군의 서울)로 삼았다.”는 없다.

 

4. 19세기 조선말의 학자 [안정복]이 붓글씨 필사본으로 본 [한서漢書지리지]에 있는 대목이 [차이나 중화서국 1959년 7월 판 사진본] 에는 없다. [안정복]이 읽고 기록한 “우거(右渠)가 도읍한 곳 군치(= 낙랑군의 서울)”을 차이나는 왜 의도적으로 삭제했을까? 혹은 실수로 누락되었다면 누락되기 전의 [한서漢書지리지]를 찾아 볼 수는 있을까?

 

5. 자료가 인터넷에 게재되어 있지 않으면 2023년 현재에도 거의 불가능한 작업을 [안정복]은 수행하여 [동사강목]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면 왠만한 것은 다 나오는 이 시대에도 정리하기 힘든 여러 주장·학설을 일일이 찾아서 붓글씨로 기록한 [안정복]은 위대한 학자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백권의 책이 데이터베이스처럼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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