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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번조선, 예맥조선, 위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탈취한 조선연방.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의 기록. 다시보는 조선열전(4)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60)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5.0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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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1)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을 보면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은 패수임이 분명하다.

 

서에서 동으로 ()만이 옮겨 간 장소이다.

 

요동외요 (한나라 요새) -> 패수 -> 진나라 옛땅, 상하장 > 조선의 왕험 (서울) 순서이다. 東走 出塞(遼東故塞), 渡 浿水, 居 秦 故空地 上下鄣,

 

(2) 요동고새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면 () 만조선의 위치를 확정할 수 있다. ‘요동은 시대에 따라 많이 옮겨졌다.

 

2. 기원전 100년의 요동은 황하 서쪽 지금의 연안시 인근

 

(1) 현재까지 지도로 확인한 요() 중 믿을만한 지도중 하나는 1402년에 이성계의 조선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하 혼일지도라 한다)이다.

 

요산이 지금 차이나 산서성 한 복판에 있다. ‘혼일지도를 기준으로 하면 요동은 지금의 차이나 북경시,석가장시, 보정시 일대가 되겠다.

 

(2) 그러나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요동에 있는 옛날요새 즉 요동고새’] 의 요동은 혼일지도에 나오는 의 서쪽으로 황하를 건너 지금의 유림시, 연안시를 잇는 지방일 수 밖에 없다.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의 서쪽에 오래된 성벽이 있으며 지금도 성벽이 표시된 지도를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성벽 요새가 조선열전의 요동고새이다.

 

(3) 지금의 연안시 - 유림시 인근에서 기원전 200년경 유방의 고향친구 노관이 옛날 연나라 (故燕고연) 왕이 되고, 친구 유방을 배반하고, 접경한 적국 흉노로 망명했다.

 

흉노로 같이 망명하지 않은 ()만이 한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려고, 상투를 틀고 오랑캐 옷(만이 복)을 입고, 천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려 요동고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 옛날 땅에 담을 쌓고 살았다.

燕王 盧綰 反, 入 匈奴, 滿 亡命, 聚黨 千餘人, 魋 結 蠻夷服 而 東走 出塞, 渡 浿水, 居 秦故空地 上下鄣

 

(4) ()만이 처음 담장을 치고 산 곳은 현재의 태원시부터 남쪽으로 임분시에 이르는 어느 지역이다. 아쉽게도 ()만의 초기 위치를 알만한 정보가 사기 조선열전에는 더 이상 없다.

 

진나라 옛날 땅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의 왕이 되었는지, 더 동쪽으로 이동해서 지금의 한단시, 안양시, 학벽시 라인까지 옮겨 왔는지 알 수가 없다.

 

稍 役屬 眞番朝鮮 蠻夷 及 故燕 齊 亡命者 王之都 王險.

점차 진번조선 오랑캐 (眞番朝鮮 蠻夷) 들과 옛날 연나라와 (옛날)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키고 (그들의) 왕이 되어 도읍을 왕험(王險)에 했다.

 

(5) (3), (4) 두 문장만 놓고 보면 ()만이 처음 거주한 진나라 옛날 땅에 진번조선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稍 役屬 眞番朝鮮 蠻夷

 

사기 흉노열전에서 나오는 예맥조선을 감안하면, ‘조선은 알기 쉬운 표현으로 조선연방이며 부족 연합체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이 왕이 된 조선은 진번조선, 예맥조선, 임둔(조선)의 연방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제목이 진번조선열전이나 예맥조선열전이 아니라 조선열전인 것이다.

 

(6) 좌방(左方)의 왕들과 장수들은 동쪽 방향으로 상곡까지 옮겨 다니면서 거주한다. 상곡에 간 사람들은 동쪽으로 예맥조선(穢貉朝鮮)과 접했다.

諸 左方 王將 居 東方 直 上谷 以 往者 東接 穢貉朝鮮 (사기 흉노열전 匈奴列傳 )

 

동쪽을 진행방향으로 흉노 -> 상곡 -> 예맥조선의 순서가 된다.

 

東接 穢貉朝鮮에서 예맥과 조선을 2개의 부족으로 해석하지 않고 예맥조선 단일 부족이라고 하면 설명이 훨씬 합리적이다.

 

사기 조선열전 첫머리에서 진번조선을 진번과 조선 2개의 부족으로 해석하지 않고 진번조선 단일 부족이라고 하면 설명이 훨씬 합리적인 것과 동일하다.

 

기존 번역자들은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정관념에 세뇌되어 차이나 대륙 거의 전역이 조선연방의 활동무대였음을 상상도 하지 못했음으로 축소지향적으로 해석해 온 것이다.

 

3. ()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빼앗은 조선

 

(1) ()만이 왕이 되어 도읍한 곳이 왕험이라는 기록, 한나라가 침공했을 때 우거왕이 에 나가서 싸워 이긴 기록을 균형있게 해석하면

 

조선연방의 서울이 왕험이고, 개별 조선 (진번조선, 예맥 조선 등)의 서울은 인 것이다.

 

(2) 진나라 옛날 빈 땅에서 살던 ()만이 세력이 커지면서 태행산맥 동쪽 지금의 한단시 부근에 서울 왕험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3) 아니면 한단시 부근에 원래 있었던 조선연방을 ()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을 수도 있다.

 

사기 송미자세가 등을 보면, 조선은 망한 은나라 서울 지금의 안양시와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가 아니었다 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於是 武王 乃 封 箕子 於 朝鮮 而 不臣 也 (사기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연방의 정권을 잡은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차이나 정사 (정부가 편찬한 역사)책이 있다.

 

바로 삼국지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이다. 삼국지는 위략이라는 역사책을 옮겼다고 하면서 위만의 쿠데타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을 요약하면

 

[ 주나라 말기에 연나라가 조선을 공격하여 만번한을 국경지역으로 했다. 진나라때 몽염이 흉노를 정벌하여 요동까지 장성을 쌓았다.

 

진나라가 득세할 때에 연····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 차츰 조선왕 준에게 亡命하므로, 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그 후 위만이 망명하여 와서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왕 준을 쫓아내고 자신이 조선의 왕이 되었다.]

 

(4) 조선으로 망명한 무리로 ()만이 처음이 아닌 것이다. ()만은 조선왕 준을 속이고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왕이 되었다.

 

“ (위만은) 中國亡命者를 거두어 朝鮮藩屏(변병. 울타리 병풍)이 되겠다고 을 설득하였다. 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博士에 임명하고 下賜하며, 百里의 땅을 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패수의 동쪽으로부터 조선연방의 준왕, 우거왕이 살던 왕험 까지가 진번조선의 땅이고, 조선연방의 서쪽 경계가 패수인 것이다.

 

4. 누선장군은 에서 발해를 떠서 열구에 닿았다. 왕험으로 진격했다. 樓船將軍 楊僕 從 齊 浮渤海, 樓船將軍 亦 坐兵 至 洌口,

 

(1) [稍 役屬 眞番朝鮮 蠻夷 及 故燕 齊 亡命者 王之都 王險.]에서 [고연 제 故燕 齊][고연 고제 故燕 故齊] 로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한나라 수군이 침공을 시작한 곳은 [] 한 글자 이다. 특별히 고제인지 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기원전 200년 경 제나라는 진시황에 의해 병합되었고 일반적으로 지금의 산동성 서북부 지역으로 본다.

 

기원전 200년경 황하가 흐른 곳을 여러 과학적인 방법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사기 조선열전으로만 보면 산동성 서북부 에서 () 만이 있는 곳으로 망명할려면 발해를 건너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2) 에서부터 발해를 떠 다녔다. 열구에 닿았다. 한나라 육군은 요동에서 출발했다.

其秋, 遣 樓船將軍 楊僕 從 齊 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 荀彘 出 遼東, 討 右渠. (중략) 樓船將軍 亦 坐兵 至 洌口, 當 待 左將軍, 擅 先縱, 失亡 多, 當 誅, 贖爲 庶人.

 

洌口 만 찾으면 너무 쉽게 결정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洌口 는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나오는 주석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3) 045 洌口 : 본문에 나타난 내용에 의하면 漢軍이 집결키로 한 洌口洌水河口地名임을 알려 준다.

 

그런데 앞서의 내용에서 (山東半島) 지역에서 渤海(현재의 渤海)水軍이 항해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洌口가 현재의 遼東지역 渤海沿岸에 존재하였다고 보아 遼東지역에서 渤海로 유입하는 으로 파악함으로써 洌水와 연결되는 王儉城도 이곳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리지린, 고조선연구)

 

이러한 사실은 4세기초 郭璞이 주석한方言朝鮮 洌水之間이란 내용에 대해 列水 名在 遼東이라 한 기록과,

 

史記集解에 인용된 張晏朝鮮 有 濕水 洌水 汕水 三水合 爲 洌水 疑 樂浪朝鮮取名 於此也란 내용 등에 근거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洌水遼河이며 洌口渤海遼河가 유입하는 지역으로 이해된다.

 

(4) (3)에 나오는 장안張晏의 설명을 추적해보자. “ 조선에 습수, 열수, 선수가 있고 이 세강이 합쳐져 열수가 된다.” 는 설명에 맞고 산서성에 있는 강으로 유력한 후보가 현재의 분하이다.

 

분하는 현재 삭주시 서남 신지현에서 발원하여 북에서 남으로 흔주시, 태원시, 여량시, 진중시, 임분시, 운성시 등 6개시와 29개 현을 거쳐 황하로 들어가는데 총길이 713 이다. 황하로 들어가는 곳은 운성시 만영현인데 황하가 [L] 자로 굽는 곳이다.

 

이 곳을 사기조선열전의 열구로 비정한다면 종제 부발해에서 발해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황하 그 자체를 말한다.

 

이는 발해를 현대의 황해 북부 발해만으로로 보는 견해, 혹은 차이나 대륙 동중부의 대륙택으로 보는 견해, 대륙택의 더 남쪽의 옛날 양산박인 서주시 미산호 인근으로 보는 견해와 전혀 맞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누구의 주장이 옳은 지는 알 수 없다.

 

(5) 필자는 열구로 가장 유력한 곳은 지금은 상당부분 말랐지만 황하와 연결된 계택, 대륙택 지역, 지금의 한단시 인근으로 생각한다.

 

열구는 황하가 넓어진 발해의 어느 항구이고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발해의 어느 강변인 것이다.

 

5. 결어

()만이 처음 진나라 옛날 땅에 살다가 조선의 왕이 되면서 왕험을 서울로 했다.

 

연나라 왕으로 있다가 흉노로 망명한 ()만의 상관인 노관의 행로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 연나라는 지금의 황하 서쪽에서 흉노와 맞붙어 있었고, 패수는 지금의 황하인 것이다.

 

기원후 285년경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삼국지가 인용한 [위략]의 기록대로라면 ()만은 진나라 옛날 땅에서 조선연방의 왕 준왕이 살던 왕험성으로 쳐들어가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의 왕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조선열전 후반부의 한나라 군대가 조선을 침공하는 장면에서 한나라 수군이 건넌 발해는 왕험성에서 가까워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황하가 9갈래로 나뉘어지고 다시 합쳐져서 하나의 줄기로 황해에 들어갔다는 기록에 중점을 둔다면, (우공9)

 

9갈래로 갈라져 흐르던 황하가 한군데로 합쳐진 곳이 발해이고,그 발해는 지금의 한단시에 가까운 대륙택, 계택, 영진박 등의 늪지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만이 처음 살던 진나라 옛날 땅은 지금의 임분시 인근으로 생각하며, ()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빼앗은 조선의 서울 왕험은 지금의 한단시 인근으로 생각한다.

 

침공한 한나라 선봉군 요동병을 맞아 조선의 우거왕이 대승을 거둔

조선연방의 거수국(제후국) 진번조선의 수도이고, 진번조선 지역이 ()만이 처음 살던 진나라 옛날 땅이라고 생각한다.

위키백과 '만리장성'에서 캡쳐한 사진을 확대하여 설명함.
위키백과 '만리장성'에서 캡쳐한 사진을 확대하여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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