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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 대한민국 한국이 아닌 차이나 대륙에 있었던 ‘코리아한韓나라’를 살펴보자. (의문의 기록 2)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28)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1.14 19:26
  • 수정 2023.01.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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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코리아 () 韓國(한국)의 왕 韓信(한신) (이하 코리아한신이라고 한다)이 살던 한() (이하 코리아한나라라고 한다)은 낙양시에서 동남쪽으로 비정되고 있다.

 

코리아한신은 낙양 동남 오백리 떨어진 영천에서 (지금의 우주시) 지금의 태원으로, 다시 태원의 북방 마읍 (지금의 삭주시)으로 이동한다. 승리의 공신인데 고향과 전혀 관계 없는 변방으로 보내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동한 곳에서 흉노에 투항하고 도리어 차이나 ()나라와 싸운다.

 

2. 지명비정

2-1) 사기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원문이다.

 

所王 北近 鞏(소왕북근공락)南迫 宛(남박완섭)

북쪽으로는 공()과 낙()에 가깝고, 남쪽으로는 완()과 섭()에 가까우며,

 

東有淮陽(동유회양)皆天下勁兵處(개천하경병처)

동쪽으로는 회양(淮陽)이 있어서 모두 천하의 사나운 군대만 있는 곳에서 왕을 하고 있다.

 

乃 詔 徙 韓王 信 王 太原 以北(내조사한왕신왕태원이북)備御 胡(비어호)都晉陽(도진양)

이에 (유방 차이나한나라 왕은) 조서를 내려 한왕(韓王) ()을 태원(太原) 북쪽으로 옮겨서 왕이 되게 하고, ( 흉노를 지칭한다)를 막도록 하고, 진양(晉陽)에 도읍하게 했다.

 

信 上書曰(신상서왈)

그러자 (코리아한나라 왕) 신이 글을 올렸다.

 

國被邊(국피변)匈奴數入(흉노삭입)晉陽 去塞遠(진양거새원)請治馬邑(청치마읍)。」

나라가 변경으로 둘러싸여 있어 흉노(匈奴)가 자주 침입하고, 진양은 변방의 요새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마읍(馬邑)을 다스리게 (으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上許之(상허지)信乃徙治馬邑(신내사치마읍)

(차이나한나라 왕 유방)고조가 허락하자, 한신은 이에 마읍으로 이사가서 다스렸다.

 

2-2) 마읍이 완전히 차이나한나라의 지배하에 있었는지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 글은 흉노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요새에서 흉노와 싸우기 위해 요새와 가까운 (혹은 요새가 있는) 마읍으로 옮기겠다고 허락을 받아 옮겼다는 것이다. 마읍을 다스리도록 () 요청했고, 허락을 받아 이사해서 다스렸다 (徙治) 고 기록하고 있다. 마읍을 사실상 지배한 것은 흉노였고 코리아한나라 한신이 이를 점령하고 도읍한 것은 아닐까?

 

3. 코리아 한나라 역사

코리아한나라의 간략한 역사를 보자. 바이두 韓國(한국)을 요약한 것이다.

 

1) 기원전 11~12세기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하고 첫 번째 분봉을 했는데, 대부분 기존 제후들의 근거지 고향을 그대로 분봉했다. 주나라 성왕 때 (기원전 1042년이라고 한다) 무경· 관숙· 채숙의 난을 진압하고 2차 분봉을 했다.

 

2차분봉에 공이 있던 ()을 당숙으로 하고 唐國(당국)을 분봉했다. 唐國(당국)()나라 서쪽에 있었다. 지금 산서성 하진현 동북이다. 唐國(당국)의 동쪽은 ()나라이다. 차이나와 부일사학계들이 ()을 지금의 차이나 북경으로 비정하는 것은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공부를 했다면 의도적인 왜곡이다.

 

唐國(당국)이 나라 이름을 해들어간 () 으로 바꾸었다. 코리아 한나라의 선조가 해들어간 진나라의 대부를 지내고 지금의 섬서성 한성시(韓城市)韓原(한원) (코리아한나라 벌판)을 분봉받았다. 산서성 하진현과 섬서성 한성시는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2) 春秋末年韩贞子 迁于 平阳今 山西临汾西南)。

춘추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03년 사이 시기) 말년에 산서성 임분시로 옮겼다.

 

3) 403魏 三家 得到 周威烈王的 承认正式位列 于 诸侯韩国建立

기원전 403년 한, , 위 세 가문이 주나라 위열왕의 승인을 얻어 제후가 되고 코리아 한나라가 세워졌다.

 

4) 开国君主是 晋国大夫 韩武子的后代建都于 阳翟今 河南禹州)。

개국군주는 해들어간 진나라 대부 한무자의 후손이고 도읍을 양적 (지금의 하남성 우주시)로 했다.

 

4. 코리아한나라 역사의 의문점

1) 기원전 1000~1100년 사이에 코리아 ()나라는 섬서성 코리아 ()성시에 분봉받았다. 대략 기원전 500 년에서 400년 사이에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를 건너 산서성 임분시로 옮겼다. 당시에 황하가 어디로 흘렀는지 모르지만 한성시에서 황하를 건너 임분시로 일족이 옮겨 간 것은 의문이다. 한성시에서 임분시까지 거리는 145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같은 한씨 부족이 한성시에도 임분시에도 살았다고 하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2) 기원전 400년경에 춘추시대의 강국 진()나라가 공중분해되어 만들어진 전국시대의 전국칠웅인 위(), (), ()의 세 나라를 삼진이라고 한다. 바이두 설명은 기원전 403년에 코리아()나라를 주나라가 승인해 주었다고 한다. 이 때 코리아한나라가 도읍한 곳이 하남성 우주시이다.

 

3) 문제는 산서성 임분시에서 서동으로 흐르는 황하를 건너 지금의 하남성 우주시로 도읍을 옮겼다는 설명이다. 임분시에서 우주시 옆 낙양시까지 태행산을 넘어서 가는 도로로 281, 태행산을 넘지 않고 황하로 둘러가는 도로로 368거리, 부산에서 서울거리이다. 과연 코리아 한나라가 본거지인 임분시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시로 옮겼을까?

 

4) 삼진이 공중분해한 진()나라의 도읍지는 황하북쪽 지금의 하남성 진성시이다. ()나라의 영토가 얼마나 크길래 황하 남북으로 걸쳐 있는가? 황하 북쪽은 위()나라, ()나라가 차지했다고 비정해도 무리는 없다. 그러나 황하 남쪽을 한()나라가 차지했다고 비정하는 것은 무리다.

 

산서성 임분시는 황하 북쪽이며 진성시를 공격하고 침입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국경을 맞대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그러나 임분시에서 황하를 건너 낙양시와 정주시보다 더 남쪽인 우주시나 신정시에 코리아한나라가 도읍을 옮길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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