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1) 지난 글에서 설契이 은殷나라의 시조이며 성姓이 자子임을 알았다. 한국 및 중국(차이나) 식으로 풀네임 (Full Name 이름, 성姓 모두 다 표현한다는 말)을 쓰면 자설子契이다. 설자契子가 아니다. 영미식은 이름이 먼저오고 성姓이 뒤에 온다. 연아=이름=first name=given name 이고
'family name=last name'이 '성姓'이다. 부, 조부로부터 내려온 바로 그 '성姓'이다. 영미식으로는 설자契子 가 된다.
춘추천국시대 유명한 사상가들을 기억해 보자. 공자子, 맹자子, 노자子, 장자子, 순자子, 한비자子... 조선에 포함되는 지를 두고 포함여부가 결정된 바가 없는 기자子 까지 수많은 ‘N 자子’가 있다. 이 모든 ‘N 자子’ 가 ‘자설子契’ 혹은 ‘설자契子’의 후손으로 성姓이 ‘자子’ 인가?
재미 있는 이름은 ‘한비자韓非子’이다. 자子 가 아닌 것이 ‘비자非子’이다. 한비자韓非子 는 성姓이 자子 가 아니면서 이름이 한韓 인 사람이다. 아마 은殷나라 후손인지 아닌 지를 두고 양반·상놈 따지듯이 심하게 따진 모양이다.
2) 성姓은 모계혈족을 의미한다고 본다. 씨氏는 부계혈족을 의미한다고 본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하고 신석기 시대가 청동기 시대로 전환한다는 전통적 설명에 맞춘 듯한 설명이지만 일단 동의한다.
성姓을 가지고 나서 대종(종갓집)과 소종 (종갓집외 핏줄)으로 나눈다. 소종은 같은 성姓에서 나온 씨氏라는 설명도 있다. 씨氏는 통상 부계혈족을 의미한다고 본다. 세월이 흘러 씨氏는 그 자체로 대종이 되고 대종이 안 된 소종은 성姓에서 나온 씨氏, 그리고 그 씨氏에서 나온 씨氏가 된다. 더욱 세월이 흘러 성姓씨氏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 지자 이를 성씨(姓氏)로 합쳤다고 본다. (유튜브 ‘벽속의 빈틈’ “성(姓)과 씨(氏)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주나라의 통치제도 속에 숨어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 )
3) 은殷나라의 시조 설契
① 은(殷)나라의 시조인 설(契)의 탄생설화는 고구리, 부여의 시조 탄생설화와 매우 비슷한 난생설화이다. 알에서 태어났다.
② 설契의 아버지는 *5제帝 중 하나인 **제帝곡이다.
③ 설契이 치수(홍수대비)에 공을 세우자 5제帝 중 하나인 제帝순(요순의 순임금)이 상(商) 땅에 봉하고 자씨(子氏)라는 성姓을 내렸다. 이 때도 이미 영토(봉지)를 나누어 주면서 성姓을 하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帝舜 乃 命 契 曰:(중략) 封 于商,賜姓子氏。
현대 한국 및 차이나 식으로 이름을 표기하면 자설子契 이 되고, 영미식으로 표기하면 설자 契子가 된다. 공자, 맹자, 기자(조선), 장자, 묵자... 등과 같다.
* ‘사기’ 기준 : 3 황 = 복희씨氏, 신농씨氏, 여와. 5 제帝 = 황제帝, 제帝전욱, 제帝곡, 제帝요(요임금), 제帝순(순임금)
** 제帝곡 고신씨氏. 오제 중 한 사람으로 아버지는 교극(蟜極)이었고, 조부는 소호금천씨氏 현효(玄囂)였으며, 증조부는 황제帝 헌원씨氏였다. 제신, 고신, 제곡, 제준, 신제(辛帝) 등으로 불린다.
황제帝 - 소호금천씨氏 - 교극(蟜極) - 제帝곡 고신씨氏 - 설자 契子 (은나라 초대왕)의 핏줄흐름이다.
2. 은殷나라 첫 번째 임금 설자 契子의 성은 자子 에서 국國으로 바뀌었나?
1) 사마천은 ‘사기 은본기’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설契의 성姓 은 자(子)였으나, 그 후손들이 봉지를 받아
국國을 성姓으로 삼으니
유은씨(有殷氏), 내씨(來氏), 송씨(宋氏), 공동씨(空桐氏), 치씨(稚氏), 북은씨(北殷氏), 목이씨(目夷氏)가 그들이다.“
契為子姓,其後分封,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北殷氏、目夷氏。(*여기도 ‘동이족’의 ‘이夷’가 보인다)
⑧ 태사공(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전략) 설契의 성姓 은 자(子)였으나, 그 후손들이 봉지를 받아
⑨ 國국을 성姓으로 삼으니 유은씨(有殷氏), 내씨(來氏), 송씨(宋氏), 공동씨(空桐氏), 치씨(稚氏), 북은씨(北殷氏), 목이씨(目夷氏)가 그들이다.
⑩ 공자(孔子)께서는 ‘은에 노(路)라는 좋은 수레가 있었다’라고 하셨다. 흰색을 숭상했다.” (**사기 조선열전의 ‘노(路)인’이 연상된다)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契為子姓,其後分封,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北殷氏、目夷氏。
孔子曰,殷路車為善,而色尚白。
2) ‘사기 은본기’ 위 문장을 그대로 해석하면 아래 ①,② 둘 중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현대적 관점에서 유은, 래, 송은 이름이고 국國은 성이 된다. 영미식 공자 맹자 증자 식으로 읽으면 유은국國 래국國, 송국國...이 된다.
“설은 자子가 성씨였는데, ①그 후에 (② 그 후손들이 )영토를 분봉받고 나서 국國이 성씨가 되었다.” 契為子姓 (설 is family name 자),其後分封,以國為姓 (국國 becomes family name)
3) 후한서 및 삼국지에는 부여왕의 장례에 옥으로 만든 수의를 사용했는데 이를 한나라가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漢時, 夫餘王葬用玉匣, 常豫以付玄菟郡, 王死則迎取以葬.
漢나라 때에는 夫餘王의 장례에 玉匣을 사용하였는데, 언제나 [玉匣을] 玄菟郡 에 미리 갖다두었다가 王이 죽으면 그것을 가져다 장사지냈다.
4) 진서에는
① 순장 殉葬,
② 곽椁은 있으나 관棺은 없는 묘제의 특징,
③ 상을 지내는 사람은 흰옷을 입는 점,
④ 상을 지내는 사람은 옥으로 만든 패물은 차지 않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진서와 ‘사기 은본기’를 비교해 본다.
3. ‘사기 은본기’를 보자
“ 1.8 제을(帝乙), 주(紂) 및 1.9 사마천의 논평” 부분을 그대로 옮겼다.
① 갑자일 주의 군대가 패했다. 주는 도망쳐 들어와 녹대에 올라가서는
②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중략)
③ 갇힌 기자를 풀어주고, 갇힌 기자를 풀어주고, 비간의 무덤에 봉분을 덮었으며(?) 상용의 마을에 상을 내렸다.
甲子日,紂兵敗。紂走入,登鹿臺,衣其寶玉衣,赴火而死。周武王遂斬紂頭,縣之〔大〕白旗。殺妲己。釋 箕子之囚,封 比干之墓,表 商容之閭。
④ 주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祿父)를 봉하여 은의 제사를 잇게 하면서 (중략) 封 紂子 武庚、祿父,以 續 殷祀,令 修行 盤庚之政。
⑤ 그 후손들은 제(帝)라는 칭호를 깎아내려 왕(王)으로 불렀다.
⑥ 은의 후예를 제후로 봉해 주에 속하게 했다. (중략)
殷民大說。於是周武王為天子。其後世貶帝號,號為王。而 封 殷後 為 諸侯,屬周。
은나라 임금은 제帝가 아니라 왕王이 되었다. 그래서 주왕묘紂王墓 가 있다. 주왕묘는 하남성 학벽시 기현에 있다. 학벽시는 은허가 발굴된 안양시 아래에 있다. 기현은 은나라의 수도이었고 주나라의 제일 큰 제후국인 위나라의 수도이기도 했다. 영화 ‘봉신방’의 신화가 생긴 곳이다. 은殷성씨姓氏는 한국의 강康성씨姓氏이다.
淇县,隶属于鹤壁市,古称朝歌、沬(mèi),是中国商朝的首都、周朝最大诸侯国卫国首都,是《封神榜》故事演绎地,中原历史文化名城,屡见于《诗经》。林姓、卫姓、康姓、殷姓以及韩国康氏、琴氏等姓氏均起源于此,是中华民族姓氏的重要发源地,也是荆轲的故乡。
https://baike.baidu.com/item/%E6%B7%87%E5%8E%BF/204218?fr=aladdin
⑦ 미자를 송(宋)에 봉해 은의 후대를 잇게 했다. (송(宋)의 위치는?)
而立微子於宋,以續殷後焉。
⑧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전략) 설契의 성姓 은 자(子)였으나, 그 후손들이 봉지를 받아
⑨ 國국을 성姓으로 삼으니 은씨(殷氏), 내씨(來氏), 송씨(宋氏), 공동씨(空桐氏), 치씨(稚氏), 북은씨(北殷氏), 목이씨(目夷氏)가 그들이다.
⑩ 공자(孔子)께서는 ‘은에 노(路)라는 좋은 수레가 있었다’라고 하셨다. 흰색을 숭상했다.” (‘사기 조선열전’의 노(路)인 연상)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契為子姓,其後分封,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一〕北殷氏、〔二〕目夷氏。
孔子曰,殷 路車 為善,而色尚白。〔三〕
*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송(頌)」에 의거해 설의 사건을 순서대로 정리했고, 성탕 이후는 『서(書)』와 『시(詩)』에서 취했다.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
4. 사마천의 논평 ⑧,⑨ 검토
1) 설契 이 통상 부르던 이름이고 성姓은 자(子)였는데 제帝곡이 설契을 제후로 임명하면서 새로운 성姓으로 국國을 주었다는 것이다. 새로 나라를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子)부족 (현대식으로 표기하면 자설子契 이다.) 에게 ‘지금부터 너희들은 제帝곡이 승인한 새로운 나라이다.’ 라고 부른 것이라고 본다. 성을 국國 으로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國 자체가 ‘나라’를 의미한다. 한국·중국 식 이름부르기로는 성이 먼저 나옴으로 자설子契이 국설國契이 된 것이고, 유목민족= 서양 방식으로 이름이 먼저 나오면 설자契子가 설국契國이 된 것이다.
은나라가 주나라와 대등했거나 혹은 더 우월한 지위에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패배하였다. 주나라는 은나라 유민들을 달래기 위해 은나라 마지막와 주의 아들이 계속 은나라 제사를 모시도록 했고, 그 후에도 미자를 송에 봉해 제사를 계속하게 했던 것이다. 어떤 민족이든 무조건 항복하는 경우는 없고 침략자 승자는 패자를 회유해야 한다.
2) 설자契子가 설국契國이 되고 난 다음 좌우간 설국契國이 대종(종갓집)인데 남자 혈족 소종을 씨로 만들어 계속 일족이 넓혀져 가니 그 성씨가 유은, 북은, 송, 래, 공동씨이다. 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一〕北殷氏、제대로 부르자면 유은국, 래국, 송국, 공동국,치국, 북은국이 되겠다. 이후 점차 자子나 국國은 사라지고 씨氏 만 남아 씨氏가 지금의 성씨가 된 것으로 본다. 來 는 현대에도 차이나 사람들이 쓰고 있는 성씨중의 하나이다. 유은 · 북은에 은殷 이 공통으로 있는 것으로 보아 은殷이 완전히 명맥이 끊어진 것이 아닌 것으로 본다. 은殷이 진번, 조선, 부여 등의 이름으로 계속 정체성을 유지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 (계속)
3) 설자契子 혹은 설국契國의 후손 송씨宋氏 가 ‘사기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의 송씨라고 본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침공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해 준 가문(나라)가 송씨이며 그 기록이 송미자세가이다. 송宋 미자(微子) 개(開)는 은(殷)나라 제을(帝乙)의 큰아들이자,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배다른 형이다. 微子開者,殷帝乙之首子而帝紂之庶兄也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본다. 자子 는 5제帝 중의 하나인 제帝곡이 성姓으로 국國을 주기 전의 본래 성姓이다. 현대처럼 성姓 다음에 이름 名(명)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름 다음에 성姓이 온다고 생각하면 微子에서 微가 이름이고 자子가 성姓 이 된다. 기자(조선), 공자, 장자, 묵자, 맹자, 노자... 왜 그리 많은 자子가 있었을까?
진실과는 관계 없이 은나라 황실 후손임을 과시하기 위해 이름 뒤에 자子를 둔 것은 아닐까? 모계혈족사회에서는 이름名보다 성姓이 뒤로 가고, 성姓과 씨氏 가 구분없이 한꺼번에 사용되기 시작하고 나서도 일부는 이름名보다 성姓이 뒤로 가고, 일부는 그 반대가 된 것이 아닐까?
서양의 이름 순서를 보라.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고 성姓이 제일 뒤에 나오는데 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이 계속 나오기도 하다가 너무 길어지니 두 개 정도만 사용하고 제일 앞 단어를 이름이라고 부른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보자. 앞에 적은 조지(George)가 이름이고, 뒤에 있는 워싱턴(Washington)이 성이다. 이를 유목민족의 특성이라고 일반화 하고, 차이나 고대의 이름이 유목민족의 특성을 따랐다고 하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인가?
송미자(宋微子)에서 자子는 성姓이고 송宋은 씨이니 ‘미微’ 가 이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