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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와 조선어학회

김문영 글지
  • 입력 2022.10.09 05:11
  • 수정 2022.10.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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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우리말과 글 말살정책에 분연히 맞선 민중

 

소설 읽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패턴이다. 가끔 영화도 보는데 극장을 찾아가기에는 일상의 리듬상 어려움이 있어 넷플릭스 혹은 유튜브를 통해 영화를 감상한다. 최근 영화를 검색하다가 '말모이'라는 영화 제목을 발견했다. 소모이도 아니고 말모이? 평생 말산업에 종사해온 나는 경주마 혹은 승용마와 관련된 영화인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 소개글을 보고 언어 즉 한글과 관련된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 주인공의 대사에서도 "말모이면 어떻고 소모이면 어때....."라고 나온다. 마침 한글날도 다가오고 있어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 '말모이' 포스터
영화 '말모이' 포스터

 

처음에는 영화가 코믹하게 전개되어 코메디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전개될수록 그게 아니었다. 많은 장면들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환갑 지낸 노인이 영화를 보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으니 주책스런 모습일 것도 같다.

영화는 대동아극장에서 해고된 후 아들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 실패한 김판수(유해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극장에서 해고된 후 다른 일자리를 찾아 면접 보러 간 조선어학회 대표가 가방 주인  류정환(윤계상)이다. 사전 만드는데 전과자에다 까막눈 판수를 반기는 회원들에 밀려 정환은 읽고 쓰기를 떼는 조건으로 그를 받아들인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나 싶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고, 정환 또한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바짝 조여오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말모이’를 끝내야 하는데…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 말과 마음이 모여 한글을 지키려 목숨을 내던진다.

한글의 현대사를 돌아보면 주시경 등을 중심으로 1908년 8월에 〈국어연구학회〉가 창립된다. 이후 〈배달말글 몰음〉, 〈한글모〉, 〈조선어강습원〉 등으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다가 1931년 1월에 〈조선어학회〉가 창립된다.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에 맞서 한글을 지키고 연구하는 데 앞장섰다. 해방 이후 1949년에는 〈한글학회〉로 그 명칭을 바꾸어 찬란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있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제 강점기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앞장 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개화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한글이지만 실제로 보급되어 매체 등을 통해 대중화 된 기간이 짧은데다, 곧바로 일제의 식민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상황에서 한글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에 따라 조선어학회에서는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면서 한편으로는 올바른 한글 사용을 위한 맞춤법 통일안 마련에 힘을 기울인다.

그 결과 1933년 10월에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발표되고 1936년 10월에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나오게 된다. 학회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외래어와 외국 인명 및 지명에 관한 표기를 통일하기 위해 1941년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교과서에 실려 있는 〈가람일기〉의 저자 이병기 선생도 함께 참여해 국어 연구와 발전에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맞춤법과 표기법을 정비한 조선어학회는 이와 함께 우리말 사전 제작에도 박차를 가한다. 1929년부터 시작된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은 1942년 봄에 이르러 조판을 앞두고 있었으나 그 해 가을 ‘조선어학회사건’이 터지고 구성원 대다수가 검거되고 투옥되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해방 후에는 일제 말기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인해 흐름이 끊겼던 국어교육을 되살리기 위해 〈한글첫걸음〉, 〈초등국어교본〉, 〈중등국어독본〉 등의 교과서를 편찬하여 우리말 되살리기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1945년 10월에는 10월 9일을 한글날로 바꾸어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 시대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되었던 사전 편찬 사업도 다시 시작하여 1947년과 1949년 그리고 1950년에는 〈조선말 큰사전〉 1권부터 4권까지를 내고 한국전쟁 이후 1957년에 6권을 마지막으로 사전 편찬 사업을 완결지었다.

영화 '말모이' 장면
영화 '말모이' 장면

 

영화는 1933년 북만주에서 주시경선생의 원고를 발견하고 그 원고를 가지고 탈출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후 1941년 서울(경성) 대동아극장에서 김판수의 입장권을 받고 관객을 입장시키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코믹한 장면들이 주를 이루지만 영화에 몰입하도록 하는 장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모이' 원고를 완성하고 한글사전 발행을 위해 노력하던 조선어학회는 회원 33명이 구속되고 2명이 고문으로 사망하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겪게 된다. 뜻있는 우체국 직원에 의해 창고에서 발견된 원고를 활용하여 '조선말큰사전'을 발행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그려낸다. 특히 문맹이었던 김판수를 내세워 일반 민중이 한글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실천을 묘사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일제(일본놈)가 우리 말과 글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악랄하게 행동했는지를 보여준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한민족이라면 모두가 보고 한글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되새기면 좋겠다.

이 영화는 일본과 군사동맹을 획책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동이 얼마나 경박스럽고 반민족적인 만행인가를 암묵적으로 꾸짖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한글의 소중함을 가슴깊이 새기며 일제의 만행을 다시 점검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또한 외래어 특히 영어가 속절없이 한글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상을 막고 점점 이질화되고 있는 남한과 북한의 한글을 통일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도 되면 좋겠다.

네이버에서 캡쳐한 사진. 1935년 현충사에서 기념촬영한 조선어학회 회원들
네이버에서 캡쳐한 사진. 1935년 현충사에서 기념촬영한 조선어학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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