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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정운창의 삶

김문영 글지
  • 입력 2022.09.18 14:11
  • 수정 2023.02.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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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얼빈'과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본 우리민족 근현대사의 아픔

 

 

나는 최근 2권의 소설을 읽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김훈의 <하얼빈>과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하얼빈>은 한일합방 시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해방이후 현대의 이야기다. <하얼빈>은 독립투사 안중근의 이야기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정운창의 이야기다.

김훈 정지아 두 글지(작가의 순우리말. 작가는 일본식 표기여서 나는 잘 쓰지 않는다)는 단어하나하나에 철저한 문학성을 녹여 창작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김훈 글지는 이순신 장군의 심성을 소상하게 밝혀낸 <칼의 노래>로 역사소설의 백미를 선보였다. 정지아 글지는 32년 전 군부독재 타도의 시기에 <빨치산의 딸>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훈 글지는 기자생활을 하다가 전업 글지로 전향했다. 나는 그의 소설들을 기자 선배라는 직업상 동료의식 때문인지 더 꼼꼼하게 읽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재미에 푹 빠져 전부를 읽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정지아 글지는 나의 대학 후배다. 대학을 다닐 때 학도호국단 폐지 등의 학생운동을 함께한 경험도 있다. 30년이 훌쩍 뛰어넘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도 학연의 정을 이어가며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빨치산의 딸> 발표 이후 수준 높은 창작활동에 전념하여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훈과 정지아는 작품 활동에서 각기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김훈은 역사적 인물을 현존의 인물처럼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이순신과 안중근을 비롯한 소설의 주인공들이 역사적 영웅들이며 자신의 현실 경험은 가능한 배제한다. 반면 정지아 글지는 자신의 경험과 삶을 작품 속에 치밀하게 드러낸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며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좌절하지는 않는다. 빨치산 아버지 정운창과 어머니 이옥남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갈등하고 이해하며 포용하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한다.

그럼 <하얼빈>과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하얼빈>이다. 안중근을 다룬 기존의 도서들이 위인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는 데 주력한 것과 달리, 김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추어 안중근과 이토히로부미가 각각 하얼빈으로 향하는 행로를 따라간다. 안중근의 삶에서 가장 강렬했을 며칠간의 일들이 극적 긴장감을 지닌 채 선명하게 재구성된다.
구한말, 쇠약해져가는 조국을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결기가 들끓고, 세상의 흐름에 맨몸으로 부딪친 민중들이 공허하게 스러지던 어두운 시대상도 김훈 특유의 문장으로 형상화된다.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안중근이 좇는 대의와 그가 느끼는 인간적인 두려움은 더욱 효과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자신과 타인의 희생을 불사하면서도, 집안의 장남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며 천주교에서 세례 받은 신앙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수시로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은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이다.

김훈은 인터뷰에서 글지로 활동하는 내내 인생 과업으로 삼아왔던 특별한 작품이라고 밝힌 바있다.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의 짧고 강렬했던 생애를 소설로 쓰려는 구상을 품고 있었다고 밝힌다. 안중근의 움직임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글로 감당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인간 안중근’을 깊이 이해해나갔다. 올해 여름, 치열하고 절박한 집필 끝에 드디어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75세에 완성한 작품이다
난세를 헤쳐가야 하는 운명을 마주한 미약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김훈의 시선은 깊이 있고 오묘한 장면들을 창작해낸다. 소설 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통해 제국주의의 힘이 드러나고 안중근의 순수한 열정이 부딪치고, 살인이라는 중죄에 임하는 한 인간의 대의와 윤리가 부딪치며 천주교 신자로서 지닌 신앙과 속세의 인간으로서 지닌 증오가 부딪친다. 다양한 심리에서 벌어지는 복합적인 갈등을 날렵하게 다뤄내며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야의 차원을 높인다. 무엇보다 식민지로 전락하는 민족의 아픔을 잘 드러낸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버지 정운창은 지리산과 백운산, 백아산을 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정운창은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정운창은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아리'는 백아산의 '아'와 지리산의 '리'를 합성하여 지어진 이름. 정지아 글지 자신)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그런 아버지가 느닷없이 사망했다. 그것도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세상을 떠났다.소설은 아버지의 장레식을 무대로 펼쳐진다. 장례식 기간 특별한 조문객과 아버지의 관계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는 해방공간과 동족상잔이 빚어낸 가족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이부문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도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우리들 현재 삶의 갈등 현상을 닮았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서 특별한 관심을 모으는 인물은 다문화가정의 샛노란 머리의 소녀다. 그는 아버지의 살아있을 적 “담배 친구”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빨치산의 정체성을 표출한다. "할배가 그랬어라. 엄마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라고. 긍게 자랑스러워해야 헌다고."라며 베트남 어머니를 둔 어린아이와 나는 동병상련으로 가까워진다.

"아이고, 먼 놈의 남자가 형광등 한나도 못 갈아 낀대? 윤재는 그 옛날에도 혼차서 뚝딱 해치우등만." 아내가 첫 남편 '윤재'와 비교하는 말을 해도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딸에게는 '담배 한까치 도라'며 가볍게만 보이던 아버지는 사실 '가부장제를 극복한, 소시민성을 극복한, 진정한 혁명가'였다.

이밖에도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사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김훈, 정지아 글지는 독특한 소설의 작품성 못지 않게 가족사도 매우 독특하다.

김훈 글지의 아버지는 유명한 무협소설을 쓴 김광주(1910~1973)다. 경향신문 편집국장까지 지냈으니 대를 이어 언론에 종사했다. 현재 김훈의 딸 김지연은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세계 1위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제작한 싸이런픽쳐스 대표이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은 에미상까지 휩쓸어 영화 제작자 김지연의 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언론인 집안이자 문화예술인 집안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정지아 글지의 아버지 정운창은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조직부부장, 어머니 이옥남은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다. 정운창은 김선우전남도당위원장 과의 협의하에 일상에서의 조직재건을 위해 위장 전향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어머니 이옥남은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에서 정치지도위원을 지냈으니 빨치산 중에서도 정통 빨치산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선엽이 지휘하는 대대적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결혼해 외동딸 정지아를 낳았다. 두 사람은 빨치산 활동 공간이었던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한 자씩 따 지아라고 딸의 이름을 지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회는 그에게 모멸찬 시련을 안겼다. 대표적으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빼어난 소설을 거듭 발표하여 어디에 내놔도 교수로 임용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정지아는 모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임용에 여러번 응모했으나 번번이 탈락하고 말았다. 대학 당국은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여러 이유를 대지만 실상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빚어진 편견의 차별 때문이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든다.

정지아 글지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며 작품성이 아주 뛰어난 많은 소설을 써냈다. 아버지 정운창을 여의고 지금은 고향 구례로 낙향하여 100세를 바라보는 어머니 이옥남을 모시고 살고 있다. 개와 고양이도  끔찍하게 사랑하여 함께 살고 있다.

 

<하얼빈>과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거의 동시에 발간되어 함께 읽어보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소설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관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떨까. 국민들의 민생은 내팽개친 채 아사리판 싸움을 벌이는 정치판을 정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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