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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68] 리뷰: 앙상블오푸스 키움프로젝트 III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8.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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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연주자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현대곡은 안 한다. 창작곡은 한다고 해도 오브리다. 단발성, 일회성 발표회에 20-30만원 받고 하는 오브리에 전력을 기울일 연주자는 드물다. 그 시간에 기존 레퍼토리 제대로 연습해서 무대에 올리기도 바쁘고 고금의 명곡들 소화해 내기도 벅차다. 창작곡을 연주해야 하는 당위성과 필요성이 희박하다. 연주자로서 테크닉적으로 가장 능숙한 나이인 1-20대엔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라도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학위를 따고 콩쿠르 등을 통해 입신양명해야 되는 마당에 경제적, 대중친화적, 문헌적 요소 등 어느 하나 메리트가 없는 현대창작곡을 연주하라고 강요하기도 명분이 약하다.

앙상블오푸스의 키움프로젝트 III

그래서 혹독한 트레이닝과 연습을 거쳐, 일개 무명 작곡가의 작품도 아닌 펜데레츠키라는 대가의 작품을 완벽에 가깝게 무대에 올리니 그 자체로 경이다. 펜데레츠키의 현악3중주(필자도 이번 기회에 처음 듣는) 첫인상은 너무나 고전적이고 독일 작곡가 볼프강 림을 연상하게금 표현주의적이라는 거였다.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의 합주에 이은 비올라,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의 솔로 순으로 출연하며 고전 협주곡의 방식으로 진행에 후반부엔 푸가까지 등장한다. 깨끗하고 정교한 바이올린의 하모닉스, 정확한 인토네이션의 비올라와 다채로운 음질의 첼로 세 명이서 선보이는 호흡과 음향적 응축의 농밀함은 그저 1,2번 맞춰보고 무대에 오른 게 아닌 실기시험 과제곡 또는 콩쿠르 출품에 버금가는 시간과 공력을 들여 연습한 흔적이 역력했다. 부러웠다. 정현서, 정현진, 임가은이라는 뛰어난 재원들이 철저한 연습과 훈련의 과정을 거쳐 어쩌면 하나의 작품에서는 현재 더 이상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도 세웠으니 한 사람의 작곡가 입장에서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뛰어난 연주자들이 그 정도의 정성을 들여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한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이 터질 정도로 흥분되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그건 요원하다.

이들이 펜데레츠키와 아렌스키 그리고 브람스를 연주할 정도의 정성과 실력으로 한국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 발표한다면 한국 작곡가들이 저렇게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릴텐데.

아렌스키를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엉뚱하게도 왜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이 자기 또래의 동년배 동료 대신 일찌감치 어린 재목들에 눈을 돌려 보아나 소녀시대 같은 그룹을 키웠는지 알겠다는 거였다. 될성부른 떡잎을 미리 알아보고 경직된 기존의 시스템과 제도 대신 세계 시장에 꼭 필요한 요소들에 맞춰서 집중적으로 트레이닝하면서 한류 스타를 배출한 것처럼 이미 육체와 마인드가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하면서 습득한 방식에 굳어버릴 대로 굳어버린 기성 연주자들과 낑낑대며 씨름하면서 바꾸려고 에너지 소비하지 않고 가능성에 투자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발휘한 거다. 작품에 대한 지식이 없어 판단 기준이 미비했던 펜데레츠키에 비해 아렌스키에서는 더욱 정현서 바이올리니스트, 정현진 비올리스트 그리고 임가은 첼리스트의 연주력에 몰입하고 우수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현 서울대 교수 백주영 바이올리니스트와 홍길동이 되어버린 전천후 용병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피아노가 더해졌다. 중간부의 청초하고 맑은 첼로 선율에 이어 정현서가 받아 천상의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이어지는 피아노의 러시아 우수가 가득 찬 멜랑코니와 현의 비단결 같은 오블리가토의 2악장, 힘의 적절한 안배로 날카롭고 매섭지만 온화하면서도 부드러운 3악장을 연출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서로 빨라지고 정신없어서 흐트러지는 주화입마에 빠지기 쉬운 3악장을 대가의 풍모를 풍기면서 안정적으로 연주하던 조절력 등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의 유산이 다분한 아렌스키의 원숙한 피아노5중주를 완숙하게 연주하였다. 마지막 페달의 여음까지 5명이 하나로 묶은 섬세함까지.

좌로부터 바이올린 백주영, 정현서, 피아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첼로 임가은, 비올라 정현진

아렌스키에서 제2바이올린을 맡았던 백주영이 브람스에선 제1바이올린으로 리더가 되더니 아렌스키에서의 거칠 것 없던 자유분방함과 기상 대신 마치 음악제나 마스터 클래스, 콩쿠르나 실내악 캠프에서와 같은 스승과 함께 하는 실내악 연주회가 되어버렸다. 다섯 명이 균등한 지분을 가진 실내악이 아닌 대가와 그의 제자들의 조합이 되어버렸다. 바이올린 정현서는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듣고 함께 보조를 맞추는 좀처럼 접하기 히든 아량과 배려를 갖춘 솔로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르투오소의 기질을 보였다. 비올라의 정현진의 선명함과 무던히 노래를 할 줄 알고 박자와 리듬감도 뛰어났던 첼로 임가은까지 마음대로 뛰놀게 내버려 두었었더라면? 아렌스키의 3악장이 조화를 이루었다면 브람스의 3악장에선 흥분과 몰아감이 과도했다. 그래서 브람스의 관현악적 사운드가 5중주에서도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돌격 앞으로가 너무 과격했다. 돌격의 선봉장이 백주영이고 다른 이들이 소대장을 따르는 형국이었다.

한국음악계를 평정할 히어로즈들

앙상블오푸스의 차세대 연주자들 육성 프로그램인 '키움프로젝트'를 통해 2009년 한국에서 초연된 펜데레츠키의 작품을 그리고 아렌스키와 브람스라는 대곡까지 수준 높은 완성도로 감상한 무대였다. 키움 프로젝트를 통한 세 명의 히어로즈들이 한국 음악계를 평정할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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