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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57] 콘서트 프리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천상의 노래'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7.26 09:45
  • 수정 2021.07.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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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일 37도에 육박하는 폭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확진자 수 천명을 넘어 2천 명이라는 숫자에 인접하면서 꺾이지 않는 코로나의 맹렬한 기세, 사는 게 지옥인가?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고 어디서 마음의 고요와 안정을 찾아야 할까? 귀의의 대상은? 그저 어서 빨리 구원받고 벗어나고 싶다. 이 더위와 감염병의 공포로부터...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찜통 속에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인내를 강요받는 2021년 7월의 끝자락....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R. 슈트라우스와 말러를 통해 잠시나마 현실에서 구원, 천상의 환희(himmlische Freude)를 선사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83세에 쓴 말년의 작품인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영욕의 세월을 거친 노장의 죽음을 앞둔 고백이자 회상이다.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자 재산은 압류당하고 고향을 떠나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때 접한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 1788-1857)의 시 '저녁놀'은 작곡가로서의 영광,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자로서의 후회와 회한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위대한 작곡가의 마지막 생명의 불씨였다. '저녁놀' 이후 <데미안>으로 잘 알려진 독일 검은 숲 지방 출신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세 개의 시에 곡을 추가하여 1번 봄, 2번 9월, 3번 잠들 무렵, 4번 저녁노을 이렇게 4개의 시가 초연되었다. 그리고 슈트라우스 사후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처럼 출판업자에 의해 <네 개의 마지막 노래>라는 이름으로 묶여져 출간되었다.

지휘자 바실리스 크리스토풀로스
지휘자 바실리스 크리스토풀로스

‘봄’과 ‘저녁놀’에서 죽음의 그림자 사이에서 동요하는 화자의 심상을 담담하게 때로는 장대하게 표현된다. ' 9월'에서의 호른을 통해 묘사되는 그 여운과 여백의 미는 위대한 거인의 황혼을 보는듯한 붉게 퍼지는 장엄한 노을이다.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에'에서의 솔로 바이올린의 선율은 이미 슈트라우스가 현실 세계를 초월하여 승천하고 있음을 예견하는 고요한 마음의 평정과 부드러움, 과거에 대한 회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죽음을 향한 묵묵한 준비이다. 부유하고 성공했던 삶,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헌신,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인생을 통한 위대한 작곡가가 세상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이자 고별인사다. 이 작품을 통해 슈베르트-슈만-브람스 그리고 슈트라우스를 통해 이어졌던 독일 낭만주의 가곡(lied)도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한 시대가 저문다....

앞의 3개의 교향곡은 규모면에서나 길이면에서나 압도적이었다. 세상에 그런 교향곡들은 없었다. 거인이 합창단을 대동하고 나와 부활을 논하고 악장은 6개로 확장되고 연주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어 90분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앞으로 나올 4번에서 또 어떤 파격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올지 고대했다. 그런데 너무 소박하다. 스펙타클하고 웅장하면서 제의적인 감흥을 불러오는 지금까지의 말러 교향곡이 아닌 모차르트의 순수함과 하이든의 정형미 그리고 슈베르트의 노래가 살아 숨 쉬는 아기자기한 실내악적인(앞의 3개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앙상블 위주의 교향곡이 나왔다. 육중한 저음을 담당하면서 심지어 솔로 악기로서 선율까지 담당했던 트롬본 그리고 튜바가 빠져있다. 인성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4악장 한 번만 나온다. 앞의 3개와 마찬가지로 가곡집 <이상한 뿔피리>의 선율들이 차용된건 공통점이다.

말러 교향곡 4번 4악장의 솔리스트 소프라노 이명주
소프라노 이명주

2악장의 촘촘함은 말러 작법을 연구하는데 모범답안이다. 정교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 하나의 모티브에서 파생한 여러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한데 어울린다. 2악장의 주인공은 온음 높게 조현되 바이올린이다. 악장은 말러 교향곡 4번을 연주하기 위해 두 대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나온다. 악장만 바쁜 게 아니다. 실내 협주곡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1부터 3악장까지 공통된 정서가 흐르고 있다. 바로 천국에서의 노님, 천상의 삶이다. 천사들이 바이올린으로 플루트로 그리고 한데 어울려서 더위와 코로나, 고통과 질병이 없는 천국을 노래하고 어서 이리 오라고 유혹하더니 4악장에서는 대놓고 소프라노가 천국의 아름다움을 해맑게 묘사하며 연가곡 <소년의 마술 뿔피리>의 노래를 차용한다. 현실의 고단함과 갈등을 넘어 마침내 당도한 천상에 대한 환희를 극대화하며 음악적 황홀경을 선사한다. 법열이 따로 없다.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이래서 우리는 폭염과 코로나도 이겨내면서 부득부득 살아가나보다. 죽음 그 너머의 인생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맛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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