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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팔복예술공장에 가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7.21 09:47
  • 수정 2021.07.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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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시민들 사이에선 '팔복공단'으로 불리는 덕진구 팔복동 제1산업단지. '쏘렉스'는 1979년 '썬전자'란 이름으로 문을 열어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팔던 회사였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CD가 나오고 사양산업이 되더니 1991년 가동을 멈췄고 이듬해 폐업하고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25년 동안 방치됐다. 쏘렉스와 팔복공단의 운명은 그 궤를 같이한다. 1969년 조성되어 수출산업의 역군이요 동력으로 자리 잡아 호황을 이루었을때 3만명이었던 팔복동 주민은 현재는 8천명으로 줄었다. 이곳이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5년간의 기간을 거쳐 전시, 예술교육, 그림책 도서관 등으로 입점한 '팔복예술공장'이란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전주의 오르세 미술관 팔복예술공장???

문화적 도시재생, 유휴공간의 활용, 거버넌스.... 전부 정치인들이 즐겨 내세우는 비전이자 지방자치장의 정책방향인데 딱 여기에 부합되는 공간이자 집약체가 '팔복예술공장'이었다. 필자가 방문한 날이 하필 전시와 공연도 없는 평일 오전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예술공장이라고 그래서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 만질거리가 있는 예술공장(공방)을 상상하고 간 필자의 기대에 한참 어긋났다. 마치 청계천의 서울문화재단 같은 관공서 같았다. 다음 전시를 위한 준비인지 모르겠으나 입구도 도정 작업이 한창이고 아무데나 공사용품이 널려있어 안 그래도 폐공장이었던 곳이 어디가 재생시설이고 공사 중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브로슈어 같은 안내문이나 공장에 대한 소개도 없고 벽에 적어 놓은 게 다였다.

1층 본관에 붙어있는 연혁 그리고 옛 흔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카세트테이프

1층의 창작스튜디오에선 예술가들이 거기 입주해 작업을 하는 곳이니 출입 금지다. 교육 프로그램인 팔복예술대학은 강의 시간도 아니니 "그저 이런 걸 하는구나~ 전주 출신 성악가 고성현이 출연하는구나" 정도로 포스터로만 접한다.

팔복예술대학의 여러 강좌와 교육프로그램 강사들

1층에 있는 어린이 유아놀이터는 토요일/일요일 주말만 체험 가능하고 홈페이지에 사전예약한다고 하며 평일 오전도 운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약마감'이라고 문에 붙어 있어 확인하기에 망설여지게 했다. 이게 다였다. 그럼 그냥 레트로 풍의 건물을 사진 몇 장 찍고 커피나 마시는 걸로 끝?

가장 사람이 많고 활기를 띄었던 써니부엌
가장 사람이 많고 활기를 띄었던 써니부엌

도대체 어떤 자가 입구에 드럼통을 세워나 출입을 방해한 건지 더운 날씨에 수주받아 작업하고 가면 되니 공사자재들은 아무 데나 놔둬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유일하게 활기를 띠고 성업을 하는 곳이 딴 한군데 있었다. 써니부엌이라는 카페테리아였다. 마침 거기서 식사를 하고 나온 친절한 아주머니 한 분이 드럼통 뒤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의 도서관에 도달 할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헛걸음만 뻔했다.

도대체 왜 2층으로 가는 계단의 입구에 드럼통과 시멘트통을 마치 바리게이트 같이 놔두어 입장을 방해하고 망설여지게 하는가! 이런 무심코 행한 작은 행동이 문화예술공간의 격을 좌우한다.

공장 앞 북전주선 철길에 드리워진 이팝나무에서 착상한 듯한 2층의 '이팝나무 그림책 도서관'에서는 '팝업북의 역사를 만나다'라는 제목하에 조촐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도서관이 있는 B동은 컨테이너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2층의 이팝나무 그림책 도서관에서 전시 중인 팝업북의 역사를 만나다.
2층의 이팝나무 그림책 도서관에서 전시 중인 팝업북의 역사를 만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책도 아니요 그림도 아닌 자유롭게 부착된 포스트잇에 있는 부자유스러운 사진 한 장이었다. 아니 광명 시장의 소명함 사진에 왜 전주시장 김승수를 사랑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을까??? 깨알 같은 글씨로 잘 보이진 않지만 사학비리척결이라는 문장이 또 붙어있다. 분명 아이들이 한 낙서는 아닐 것이다.

도대체 왜 여기에 박승원 광명시장의 사진이 붙어있고 그 위에 전주시장 김승수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지????
도대체 왜 여기에 박승원 광명시장의 사진이 붙어있고 그 위에 전주시장 김승수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지????

도시재생이네 유휴공간의 활용이네 하는 명목으로 폐공장이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동이 중단되거나 수명이 다한 건물을 재활용하여 재탄생 시키는 문화활동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게 다 사이클이 있다고 먹고 살만하니 사람들이 문화에 눈을 돌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문화복지사업의 일원으로서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허물지 않고 새롭게 지으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였다.

전주 팔복예술공장의 전경!

전주에는 팔복예술공장이 대표적인 전주의 문화재생사업 모델이라고 해서 가봤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드라마가 유행해서 드라마 세트장을 그대로 유지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려고 했다가 시간이 흘러 드라마의 인기가 사그라지니 찾는 사람이 없어 자치단체의 관심에서 잊혀 관리가 안 되어 거미줄만 쳐진 것처럼 이곳 팔복 예술공장도 별다르지 않았다. 가봐야 안다. 그럼 그 도시의 문화 수준과 인식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자기들끼리는 백번 모이고 해봐도 안 고쳐지고 모른다. 하필이면 전시도 없고 교육도 없는 평일 오전에 방문해서 그렇다고 누가 이 글을 보고 항변하고 정식으로 다시 방문하여 내 선입견이나 고쳐줬으면 좋겠다. 나와서야 알았다. 전주문화재단이 여기에 상주하고 있었다는걸... 어쩐지 발을 들여놓자마자 받았던 서울문화재단 같은 관공서의 느낌은 여지없이 맞았던 셈이다...

이 사진만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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