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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52] 바이올린의 도시: 루마니아 도시 레긴의 장인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7.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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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중북부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칼리마니와 구르기우 숲의 목재는 울림이 좋아 인근에 위치한 도시 레긴(Reghin)은 악기 제조업, 특히 바이올린 제작으로 번성했다. 1951년 호라(Hora)라는 악기 제조회사에서 처음으로 레긴을 기반으로 두고 악기를 제작했고 1992년에 설립된 '글리가 악기(Gliga Instrumente Muzicale)'사의 바이올린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이 사용할 만큼 뛰어날 품질을 자랑한다.

바이올린의 도시, 루마니아의 레긴
바이올린의 도시, 루마니아의 레긴

글리가 악기의 공방에서 1년에 단 몇 점의 악기만을 만들어내는 숙련된 장인들이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1992년 문을 연 글리가 악기사는 지난해에 바이올린부터 콘트라베이스까지 현악기 5만점을 판매했는데 이중 루마니아 현지 고객은 단 2%에 불과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레긴에는 글리가와 버진 반딜라 같은 유명 공방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거리마다 한두 명의 현악기 장인들이 살고 있어 레긴이 바이올린의 도시라는 말이 실감 난다. 그러다 보니 루마니아 나라 자체에서 악기를 수출한 악기 수는 유럽연합(EU)에서 1위를 자랑한다.

글리가 공방의 장인들이 각자 맡은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 

하지만 여기에도 엄연히 불안과 보이지 않는 위험(the phantom menace)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업을 이어갈 후속세대의 발굴에서 계승과 함께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경쟁이다. 품질이 뛰어난 바이올린의 제작은 1년에 걸쳐 300시간이 필요하다. 제작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길며, 수공 작업이다. 재료로 쓰이는 나무는 5년간 건조해야 한다고 한다. 레긴에서 제작된 바이올린을 높게 쳐주는 이유 중의 하나가 레긴 주변 숲의 오래된 단풍나무로 제조했다는 점인데 이들 목재를 현지 중개인을 통해 중국에서 대량으로 사들여 바이올린 1점에 30유로(약 4만 원) 정도 되는 가격으로 팔고 있다. 이에 반해 루마니아의 바이올린은 훨씬 더 비싸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즉 공장에서 대충 찍어낸 조악한 대량생산 vs 비싸지만 고급스러운 고품질의 명품과의 경쟁구도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산 저가 악기는 가격은 저렴하다. 유럽산악기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덤핑과 마진을 통해 가격이 몇십 배 또 뛰어버려 전공자나 전문 연주자들이 아니면 쉬 구입하기 힘들지만 악기 태반이 유통되고 사용되는 아마추어, 학교에서의 연습용 악기 구입자들이 어쩔 수 없이 '싸구려'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

글리가 공방에서 악기를 제조하는 모습

도자기로 유명한 여주/이천 지역의 여주대학교에서 도자기 관련 전공 학과를 없애고 익산의 원광대는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던 서예문화예술학과(이하 서예과)를 폐과시켰는데 원광대는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서 유일하게 건진 것"으로 평가한 켈리그래피와 서체를 개발한 세계 최초의 서예과를 개설한 학교이기도 하나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다. 전통문화의 양식의 보존과 발전 사이에 경영과 자본의 논리가 들어가면 상대적으로 보존과 계승 쪽은 밀릴 수밖에 없다. 돈 앞에선 모든 게 속수무책이며 또한 하겠다는 사람과 찾는 사람이 없는 시대의 트렌드에 뒤처지는 업종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계속 지원을 하는 것도 엄연히 한계가 있다.

엔카에서 기원한 중장년층에서 즐기던 왜색의 트로트가 화려하게 부활하였듯이 시대의 흐름과 양식 그리고 needs를 파악하고 충족시켜준다면 전통과 현대의 공존도 가능할 텐데.... 저 레긴 도시의 바이올린 장인들 중 몇몇은 분명 살아남을 테다. 초고가 명품 전략으로 5만점이 아닌 몇백 점만 팔면서.... 나머지는 냉혹하다 하겠지만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겠지... 특히 발 빠른 유연함과 끊이지 않는 적응력을 요구하는 한 사람에게 여러 부캐가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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