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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로 떠나는 시간 여행: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국립공주박물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6.15 08:40
  • 수정 2021.06.1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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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맞은편의 맛집이 즐비한 백미고을을 넘어 제민천을 건너 쭉 건너니 왼편에 황새바위성지가, 오른편에 공주중학교가 나왔고 이름만 봐도 왕릉으로 인도할거 같은 왕릉로라는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정말 왕릉이 나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웅진백제시대의 왕과 왕족의 묘가 있었고 그 안에 유명한 무령왕릉이 자리 잡고 있는 송산리고분군이다.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

1971년 배수로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굴된 백제 25대 왕 무령왕릉은 150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베일에 싸인 백제사를 풀 수 있는 실마리이자 고고학 연구에 귀중한 단초가 되고 있다. 1971년에 송산리 6호분으로 들어가는 물을 막기 위해서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벽돌이 나오고 이를 발견한 인부가 박물관에 보고를 하자 대학의 고고학 교수들이 와서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발굴 첫날에는 비가 와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철수했고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한심하고 '나몰랑!~!!아님말고" 식의 무책임한 기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서로 사진을 찍고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무덤 앞부분에 놓여있던 청동 숟가락을 기자가 밟아 부러뜨리기도 했다. 흐트러진 무덤 안에서 촬영도, 실측도, 유물 수습도 정석대로 이뤄질 분위기가 아니어서 공사용 삽으로 포대 가마니에 유물을 쓸어 담고 12시간 만에 발굴을 마쳤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지금도 송산리고분군 내에서는 미확인된 고분이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고 조사도 한창이었다. 방문한 날도 인부들이 천막을 치고 앉아 물을 마시고 떠들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고생하지만 장돌 하나 풀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을 텐데 그냥 일당 주니 와서 단순 노무로 여기는 건 아닐는지 하는 노파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송산리고분군 내의 무령왕릉

무령왕릉의 내부는 침하 현상과 빗물이 침투되는 위험성 때문에 개방하지 않았다.(당연한 거다. 굳이 인간들이 들어가서 훼손할 필요는 1도도 없다.) 대신 송산리고분군 전시관은 무령왕릉 및 5.6호 분을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으며 입구의 웅진백제역사관은 백제의 역사 문화 콘텐츠를 IT 시스템을 활용하여 생생한 현장의 느낌을 받고 알 수 있게 해 놓았으니 이걸로 충분하다.

송산리고분군 전시관

무령왕릉에서 찾아낸 금제관식, 금제뒤꽂이 등등의 국보는 고분군 뒤에 위치한 국립공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하니 자연스레 청기와 벽돌길을 따라 넘어가 보았다. 무령왕릉의 출토품 말고도 대전 & 충남지역의 92,103건 포함 총 258, 661이라는 엄청한 문화재를 수집, 보관하고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은 크게 <웅진백제실>과 <충청남도 역사문화실>로 나뉜다.

경내에 들어서니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이 틀어져 있던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백제실이야 지금까지 하루 종일 걸어왔던 무령왕을 비롯한 웅진백제시기의 유품이 놓여 있는 것인데 충청남도 역사문화실에서 ‘천안 용원리(龍院里) 유적’이 눈에 띄었다. 한 번만 우연찮게 나온 게 아닌 현재의 충청도와 백제를 언급할 때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지명인데 이목을 끌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천안 용원리 유적

4~5세기 백제 무덤의 대표적 유적이며 특히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던 시기에 지방 세력들이 조성한 무덤은 묘제와 출토 유물을 통해서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적이다. 4~5세기는 백제가 서울에 도읍을 두고 충청·전라도를 지배하던 이른바 한성백제(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 때로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까지다. 용원리 유적은 천안종합휴양관광지 조성 사업이 한창이던 1996~1997년에 구제발굴 성격으로 진행되었는데 천안종합휴양관광지라면 작년 여름에도 다녀오고 구시렁거렸던 천안예술의전당이 있는 거기 아닌가! 1~2년에 한 번은 공연이 있어 내려가면서 이런 벽지에 문화예술전당을 선심 쓰듯이 지어놓고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싶으면 시내에서부터 버스 타고 장시간 이동하게 만들었으면서 무슨 문화예술의 일상화냐고 입에 침을 튀기고 비난했던 그 천안예술의전당이 위치한 곳이 백제 유적지인 천안 용원리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개탄스럽다. 분노가 솟구쳐 오르면서 또다시 환멸을 느끼게 만드는 저급한 인식이다. 문화재든 유적지든 거기서 숟가락이 나오든 왕관이 나오든 모두 쓸모없는 돌덩이에 불과하고 떡이 생기지도 않고 밥도 생기지 않은 무용지물인 음악, 미술 따위는 금싸라기 시내 한복판에서 관람하면 안 되니 멀리 구석에 처박아 두는 거다.

국립공주박물관 실내 전경

며칠 전 필자의 고향인 광주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갑자기 무너져 정차되어 있던 버스를 덮쳐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가 있어 발굴, 공사현장이라고 하면 무섭고 경기가 일어난다. 안 그래도 하루에도 수십 번 청소기, 드릴, 집 앞 10미터 거리 앞에 있는 대학교 오물장의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는 압축진개차의 폐기물 담고 처리하는 소리에, 귀가 먹었는지 학교 담을 넘어서까지 온 동네방네 다 들으라고 크게 틀어놓은 학교 교내방송의 스피커 소리, 주야장천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담배 냄새 풍기면서 가래침 뱉고 욕지거리하면서 싸우는 주취자들의 악다구니에 질려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인데 무령왕릉에서도 용원리 유적에서도 여기랑 별다른 게 없는 문화재든, 유적이든, 재개발 지역이든, 대학교 쪽문 인근이든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돈만 아는 사욕과 인간성의 상실에 환멸이 든다. 그럴 때마다 공주로 떠나야겠다.

백제 무령왕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5시에 약속이 있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넉넉잡고 공주에서 2시 30분에 출발했는데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정안휴게소부터 막히기 시작하더니 서울로 오는 내내 거북이걸음으로 140KM의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쭉 왔음에도 불구하고 장장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공주만 벗어나니 다시 전쟁터다. 바로 전에 가득 충전한 힐링 게이지가 운전하고 오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다시 가야겠다. 호젓한 산책길이 널려있고 정신문명이 발달한 백제의 문화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주 그리고 백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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