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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광복! 강화도 마니산에서 8.15 광복절 행사를! (3)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1.05.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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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홈페이지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로 해도 너무나 조용한 대한민국.
이승만이 현충일을 만든 까닭. 1949년 6월 6일은 친일파 처벌 반민특위를 친일경찰이 습격하여 모든 증거를 없앤 날.

정세균 전 총리는 529일 충남지역 시·도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 것을 삭제하라는 한국 요구를 일본이 528일 거절한 것과 관련하여 일본 측 지도가 수정되지 않으면 올림픽을 보이콧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현지시간으로 528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그리고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게 일본의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 측의 주장은 전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BC 뉴스 5. 28 올림픽 지도 '독도 삭제'일본 "수용 불가")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광복후 1948년에 설치된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를 제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산되고,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한국인의 머릿속에 한반도 지도를 심어 놓은 일제와 일제에 아부한 조선사편수회의 한국인 이병도 때문이다.

이병도는 반민특위에서 처벌되기는커녕 국사편찬위원장이 되고 문교부장관까지 지냈다.

역사 공부를 하면 대학 교수나 교사가 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취직자리가 없던 50년대, 60년대에 이병도의 거짓말에 대들면 밥줄이 끊기는데 누가 일제와 이병도가 조작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이병도 줄에 선 가짜 학자들이 선생과 제자, 도제관계라는 그럴 듯한 말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그들의 밥줄에 대드는 민족사학을 유사사학이라고 내쳤다.

조선시대 왕들이 단군을 국조 (할아버지)로 모시고 강화도 마니산에 가서 천제를 지냈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단군이 가짜(신화)라고 한다.

일본과 비슷한 수준까지 경제가 발전했지만 일제와 이병도가 깔아놓은 역사의 덫에서 한국인들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의 잘못 중 가장 큰 잘못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을 헌법에 넣은 것이다.

한반도는 어디까지가 한반도인가?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으로 1키로미터, 10키로미터, 100키로미터 등 북쪽으로 몇 키로미터까지가 한반도인가?

강을 건너면 단 1미터도 한반도가 아닌가?

부속도서는 어디까지가 부속도서인가?

남으로 제주도가 한반도에서 가까운가? 대마도가 한반도에서 가까운가?

 

이병도의 죄악중에 가장 큰 죄악이 한민족은 단일민족이고 (이는 일본과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여진, 숙신, 거란 등이 같은 한민족이 아니라고 규정한 것이다.

일제가 패망하고 나서 남한과 북한은 스스로 만주와 연해주가 한민족의 영토가 아니라고 선언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거란은 스스로 고구려의 후손이라 했다.

발해는 일본과 중국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고()려국왕이라고 표현했다.

발해는 중국인들이 고도의 정치적 학문적 계산으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발해는 스스로 발해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성계는 여진족 출신이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정부가 만든 역사책 흠정만주원류고에서 만주족은 조상이 신라임을 떳떳하게 밝히고 있다.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한자를 보라!

만주의 조상 (원류)에 대해서 살펴본다는 말이다.

흠정(欽定)은 황제의 판단, 또는 판단한 것을 가리키는데 흔히 책의 명칭에 붙이곤 했다.

'흠정'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은 황제가 내용에 직접 관여하여 편찬한 것이다.

만주인이 시대별로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발해, 여진으로 그 계통이 이어지고, 청 제국의 건국은 만주 지역에서 1,000여 년 동안의 이어져온 계통의 고유한 정치적, 문화적 발전과 진보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다.

만주원류고에서는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 혹은 고려의 인물로 상정하면서 부여, 삼한, 백제, 신라, 발해 등을 그 계통과 역사에 포함시켰다 (위키백과)

 

일제와 이병도가 심은 가짜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역사적 순간이 반민특위였다.

19488월 독립투사들에 떠밀려 억지로 반민특위를 만든 이승만은 하는 척 시늉만 하다가 1949년 반민특위를 해산하였다.

66일이 왜 현충일인가?

66일이 무슨 역사적 전통을 가진 날짜이기에 현충일로 명명되었나?

일제하 독립투사를 기리는데, 6.25 한국전쟁 중에 전사한 국군을 기리는데 꼭 66일이어야 할 아무런 역사적 이유나 근거가 없다.

66일은 이승만이 사주한 친일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모든 증거자료를 없애버린 날이다.

역시 일제시대 검찰, 판사였던 대한민국의 검찰, 판사는 증거부족을 명분으로 모든 친일파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194966일은 반민특위가 사실상 해산된 날이었다.

194910월 반민특위 해산 후 8개월만에 6.25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휴전후 다시 독립투사들이 친일파 처벌을 요구하자 19564월 이승만은 뜬금 없이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장병들 제사를 위해 66일을 현충일로 지정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친일파 처벌보다는 반공을 우선하면서 반민특위 사실상 해산일인 66일의 아픈 역사는 현충일로 바뀌어졌다.

노회한 이승만이다.

단군을 가짜 (신화)로 만든 일제와 이병도 (이완용의 몇 촌 조카이다)66일 현충일 덕분에 살아남았고, 일제와 이병도가 쳐 놓은 덫은 아직도 한국인의 머릿속에 튼튼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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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제대로 하지 않고 나서지 말라!

고려 시대에도 처음으로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그 날짜가 66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망종 때가 되면 국가의 영웅들에 대한 예를 갖추는 날로 쓰였는데요. 망종의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6.25 전쟁 이후 전쟁에 참여해 목숨을 바쳤던 순국선열을 추모하기 위해 1956419일 대통령령으로 66일 현충일이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제정 당시에는 추모 대상이 한국전쟁 전사자에 한정됐으나 1965330일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던 모든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날도 바뀌었답니다.“ (한일기본조약은 박정희 집권 4년만인 1965622일 체결되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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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7 JTBC 뉴스 캡쳐 편집
2019. 6. 7 JTBC 뉴스 캡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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