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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5.06 09:15
  • 수정 2021.05.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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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만 오래 걸린 게 아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작가인 이어령이 황홀한 산통을 겪었다면 독자인 난 인고의 행군을 했다. 10년에 걸쳐 저술한 책을 1년에 거쳐 읽었다.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도 아나필락시스를 지독한 겪었다. 괴테의 <파우스트>을 읽는 것처럼, 도대체 이게 한국말인가 외계어인가 중체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의 니체나 헤겔, 아도르노의 서양 철학책을 읽을 때처럼, 아님 서양에서 무슨 상 하나 받으면 최고의 명작이라고 칭송하지만 막상 책을 집어 들면 갸우뚱거리게 만들고 몇 장 읽다 침대 모서리로 던져 버리는 문학상 수상작 작품을 읽었을 때처럼 진도가 안 나간다. 그런데 다르다. 어렵고 현학적이고 불공감에서 오는 거부와 괴리감이 아니라 한 대목마다 깨닫게 되고 은유하게 되고 생각하고 공감할게 너무 많아 혼자 웃다 울다 미소 짓다 탄식하다 경탄하다 한숨을 쉬다 난리를 친다. 그렇게 겨우 골짜기를 완주하고 한 바퀴 돌았을 뿐이다. 한번 가지고는 턱도 없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가보로 간직해도 될 정도로 한국인의 DNA에 대한 성찰과 연구의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 시대 지성의 아이콘, 이어령 박사의 한국인 이야기- 탄생편

<중앙일보>의 연재로부터 시작되어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발간된 <한국인 이야기 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파람북)은 한국인이라는 단어의 유래부터 정체성까지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태명부터 시작하는 첫 고개에서 어머니 뱃속에서의 열 달을 거쳐 삼신할미의 점지를 받아 귀가 빠진다. 동물 중에서 가장 미숙한 채로 태어나 1년이 지나야 겨우 일어서 걸음마를 배우고 최소 3년이 지나야 제대로 숟가락질을 하면서 인간의 형상이 되어간다. 그동안 부모님, 어머니의 보살핌과 마을 전체의 조력을 받아 기저귀를 떼고 옹알이를 하면서 돌을 지낸 것처럼 우리네 부모님이 한 줌 흙이 되었을 때 그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움막에서 초상을 치르며 함께 한다. 부모는 과거지만 내가 훗날 부모가 되면 부모의 과거였던 시간이 내 훗날 미래의 시간이 되는 것이요 그러면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생전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증/고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난 이 땅에 저절로 내던져진 게 아닌 막연한 조상님이란 이미지가 한 개인의 스토리가 아닌 집단의 히스토리가 되어 나는 누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이야기로 풀어져 나간다.

사진 갈무리: JTBC 다큐멘터리 '헤어지기 전 몰래 하고 싶었던 말-이어령의 백년 서재에서'

한국어가 가진 깊은 뜻의 의미를 파악해 내어 시리게 아름답고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고여 입에 되새기면서 음미하고 음미한다. '나들이'란 단어..... 나갔다와 들어온다의 합성어다.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는 민족답다. 나갔으니 들어와야 하고 다시 와야지 그러지 않으면 큰일 난다. 포대기, 호미..... 한국에선 천대받는 것들이 외국에만 나가면 '원더풀'을 외친다. 전부다 고유 한국어며 이런 막 굴리는 것들이 한류의 원천이요 한민족의 기반이었다. 당장 '막'자가 들어가는 물건이나 단어들을 몇 가지만 떠오르는 대로 풀어봐도 어디서나 우리 주변에서 겪을 수 있는 한국인이 만들어진다. 막걸리는 막사발에 마시고 막춤을 춰야 제격이지 않는가!

필자의 책장에 꽂혀있는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

한국 문화의 원형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게 되면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되어가는 것이며, 한국인은 완성된 고정관념이 아니라 생성해가는 어쩌면 영원히 완결될 수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국 대표 지성이자 철학자요 시대정신의 대변자이자 설계자였던 이어령이 2021년 현시대, 필자와 같은 40대였다면 세계 전체를 호령하고 인류의 뿌리를 캐내어 유발 하라리 보다 더 전 세계적인 지명도와 영향력을 가질 텐데 일제강점기 세계의 변방 중의 변방인 한반도에서 평지돌출로 태어나 서구 중심주의에 맞서 고려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의 정신문명을 풍성하게 해주는 초석을 다졌으니 감사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맨부커 상을 받은 문학에서의 한강이 나왔으며, 음악에서는 BTS와 진은숙이 나왔으며 얼마 전에도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제 이어령의 씨앗을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갈 과제는 현대 한국인이 떠맡게 되었다. 그거야말로 앉아서 전 세계의 소식을 알 수 있고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디지털 세대의 당연한 책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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