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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혜경 단짠 칼럼] 개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

마혜경 칼럼니스트
  • 입력 2021.04.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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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잠자고 있는

 

 

개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 

 - 마혜경

 

 

출처 | 아시아인경제DB
출처 | 아시아인경제DB

 

누가 누굴 조심해야 할까. 사람이 조심해야 할까. 차가 조심해야 할까. 이 두 개의 '조심'은 결국 사람이 하는 행위로 동시에 존재해야 맞지만, 만약 선두를 정해야 한다면 누가 먼저 조심을 실천해야 할까. 처음의 조심과 나중의 조심은 얼마간의 간격이 적당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동시에 실천되는 게 맞지만 말이다.

끼이익~ 걷다가 브레이크 소리를 들었다. 아스팔트의 거친 소음이 걸음을 세웠다. 다행히 생각보다 큰일은 아닌 것 같다. 놀란 두 사람이 도로 위에서 얼음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 차창 문이 열리자 남자가 거북이 마냥 목을 빼고 손가락을 길게 뻗는다. 어머니뻘 되는 할머니에게 욕을 퍼붓는다. 그의 언어는 문자로는 기록이 가능하나 내 기억은 한 장의 얼룩으로 처리할 것이다.

 

"이 노인네가 눈은 어따 뜨고 다녀,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

누가 누굴 조심해야 할까, 누구 하나 죽는 꼴 안 보려면… 조심이 혼자만의 일인가. 누가 봐도 남자가 과속을 했고 억울하게 죽을뻔한 대상은 할머니였는데.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이 대략 열 개라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제일 중요하지만, 운전대를 잡았다면 말이 달라진다. 세상에 열 개의 목숨이 있다면, 타인의 목숨 아홉 개를 먼저 챙긴 후 그다음이 자신의 차례라 생각하면 쉽다. 이 일은 자신을 챙기는 일에 소홀해 보이지만, 아홉 개의 목숨을 챙기는 일은 결국 나 하나를 살리는 밑거름이 된다.

지금은 거의 보도블록으로 덮였지만 그땐 수많은 발자국이 찍힌 골목이 많았다. 어릴 때 그곳을 걷다가 ‘개조심’ 팻말을 본 적이 있다. 흐르다 말라버린 붉은 페인트 글자를 보면 목뒤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입체적으로 솟은 글씨에 손을 대면 동맥이 뛰는 것처럼 맥이 느껴졌다. 목숨이 이 세 글자에 달렸다 생각하니 피비린내가 났다. 한동안 그곳을 지나는 일에 겁이 났으며, 아빠가 손목을 잡아주기 전에는 엄두도 못냈다.

​글씨는 대부분 판자 위에 쓰여 있었다. 그것이라면 구하기도 쉽고 언제든 버려도 아깝지 않은 흔한 재료다. 간혹 문 위에 바로 쓴 ‘개조심’도 있었다. 개가 식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주인의 털털한 성격 탓일 수도 있다. 꼼꼼한 주인이라면 자로 잰 듯 반듯한 글씨를 고집하겠지만, 이런 집은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어떻게 보면 험상궂은 문구를 위해 한 집안의 얼굴과도 같은 문을 양보한 것이다.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문은 그 집의 트레이드 마크로 재력의 정도와 고집 또는 교양까지 가늠할 수 있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개에게 얼만 간의 여백을 할애한 주인의 배려심에 정이 간다. 그 안의 개가 어떻든 간에.

​개들도 ‘개조심’이라는 글의 존재를 알까. 글은 몰라도 바깥의 발소리로 약자를 가려내는 걸까. 아무리 조심조심 걸어도 개는 컹컹 짖기 시작했다. 목에 묶인 쇠줄이 시멘트 바닥을 긁는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앞발을 들고 허공이라도 긁는지 컥컥, 목 조이는 소리가 휘어진 골목을 할퀴고 빠져나간다. 그래서 골목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미리 개조심에 대한 다짐을 해야 한다.

 

​‘개조심’은 자신의 개가 행여 사람을 해칠까 걱정한 개 주인이 문패 다음으로 문에 걸어두는 문구이다. 팻말을 걸었다고 개 주인의 걱정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개가 흥분하거나 크게 짖으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사람이 개 주인이다. 주인은 개의 목줄을 점검하고 포악성을 달래기 위해 틈틈이 훈련을 시킨다. 개조심 문구는 타인에게는 주의가 되고 개 주인에게는 일종의 긴장감을 각인시키는 힘이 된다.

 

개의 이빨과 침에는 균이 많아 개에 물리면 통증도 심하고 상처가 오래간다.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하며, 그 뒤로도 소독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흉터는 깊고 오래 남는다. 개 주인은 개가 한 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지면서 늘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달고 산다. 그래서 ‘개조심’이라는 글엔 타인의 안전을 바라는 주인의 마음과 배려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개를 반려견으로 부른다. 개의 야생을 체크하는 일은 주인의 몫으로 강화되었다. 사랑스럽다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작용해 주인이 아닌 이상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 개 주인은 늘 자신의 개를 살피며 목줄을 당기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건은 순간에 존재하므로, 개의 사랑과 충성에 눈이 멀지 않도록 모두의 안전을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요즘은 개조심 팻말이 흔치 않지만 그것과 별개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물을 조심하라는 역술가의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술을 조심해야 하며, 불을 조심해야 하고, 바이러스를 조심해야 하며,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친절함마저 조심해야 한다. 미투가 두려운 남자들에겐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조항 하나가 추가되었으니, 개조심보다 더 한 조심들을 암기해야 하는 세상이다. 손가락질 하나로 사건이 되고 댓글 하나에 목숨이 달렸다. 조심하지 않으면 개에게 물리기 딱 좋은 세상이다.

​수많은 조심 중에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운전이다. 운전하는 동안은 개조심 팻말을 달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애마가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운전대를 제대로 잡고 개 주인의 눈으로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운전대를 잡았다면 이제 차는 사나운 개 한 마리다. 어디로 튈지 운전자만이 안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사나운 개를 사랑스러운 반려견으로 만들려면 운전자의 태도 하나만 점검하면 그만이다. 운전대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이 고민은 열 개의 목숨을 살리고도 남는다.

운전하다 보면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가 많다. 대처 능력이 부족한 노인들과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가장 큰 이유다. 이럴 때 운전자가 보여야 할 태도는 바깥의 놀란 사람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따질 것이 아니라 개 주인의 마음으로 사나운 개의 목줄을 당겨야 한다. 목소리가 커야 이긴다는 도로 위에서도 개 주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개가 한 일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누가 누굴 조심해야 할까. 사람이 조심해야 할까, 차가 조심해야 할까. 이 두 개의 ‘조심’은 결국 사람이 하는 행위로 동시에 존재해야 맞지만, 만약 선두를 정해야 한다면 누가 먼저 조심을 실천해야 할까. 우린 실수를 밥 먹듯이 한다. 이제야 해답을 찾았다. 사나운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 먼저 조심을 실천하면 된다. 거북이 마냥 목을 빼고 손가락을 길게 뻗었던 남자가 자신이 키운 개의 오만함을 반성하고 놀란 상대의 마음에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 예의를 다 해야 한다. 누구나 가슴속에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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