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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20] 리뷰: 2021 교향악축제 춘천시립교향악단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4.05 08:41
  • 수정 2021.04.0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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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4일 일요일 오후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맨손의 연금술사 이종진이 펼치는 광활하고 환상적인 북구 여행이었다. 첫 곡인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부터 힘차고 활기차다. 봄비가 내리고 청명하게 개인 날씨처럼 싱그럽고 푸르기 그지없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2021 교향악축제의 지휘자 이종진과 춘천시립교향악단

작년 롯데콘서트홀에서 에스메 콰르텟의 리더로 처음 접한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가 오늘은 솔리스트로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을 들고 나왔다. 앞의 서곡에서처럼 곡의 서두는 지극히 안정적이고 평온하며 그건 2부에서의 시벨리우스 교향곡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첫 비팅, 야구로 따지면 1회가 선발투수에게 가장 어려운 법인데 이종진은 그러지 않다. 전체 악곡의 문을 여는데는 이종진은 탁월하다. 배원희의 바이올린은 전반적으로 아담하고 감미로웠다. 배원희의 선율성이 가장 유려했던 부분은 1악장 카덴차 이후 재현부에서의 2주제와 2악장의 주선율이었다. 여기에 춘천시향 목관악기의 따사함이 더해지며 유난히 플루트가 영롱하다. 그건 1악장 카덴차 이후 주제가 얹히는 그 순간에도 반짝하고 빛났다. 3악장에서는 지금까지 숨겨왔던, 아니 비축해왔던 배원희의 박진감이 드러난다. 3악장 끝부분으로 치달을수록 거구의 서양 여자 선수들을 찔러 넘어뜨리는 펜싱 남현희 선수와 같은 플뢰레다.

아담하고 감미로운, be loved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

오늘 연주한 3곡 모두 처음 개시는 안정적이었으나 곡의 전체를 보면 부분부분 아귀가 안 맞는다. 협주곡에서 독주자의 변화무쌍한 표현에 오케스트라가 순발력 있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기도 했다. 2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은 양탄자가 깔리면서 시작하고 금관악기의 육중함이 더해지더니 2악장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슬프고 비분강개가 솟구치게 만든다. 백발의 트럼펫 주자가 메아리로 울리는 2악장의 선율이 더욱 쓸쓸하고 고적함을 더해준다. 2악장 끝부분은 2악장의 처음과 합이 맞듯 다시 등장하는 첼로의 피치카토에 깔리는 비장한 현의 선율이 이종진의 주특기인 호흡을 동반한 긴 프레이즈 처리로 일품이다. 이어 단장(斷腸)의 선율이 이번에 다시 트럼펫의 플뢰레처럼 날카롭게 찌르며 가미된다. 너무나 예리해서 살이 베인 듯하면서 현재 코로나로 처한 우리의 아픈 현실을 환기시킨다. 3악장은 듣고 있다 보니 절로 눈앞에 안개가 자욱한 호수가 그려진다. 아~~그러고 보니 춘천은 호반의 도시였지. 시벨리우스의 고국인 핀란드와 같다. 의식치 않은 상황에서 핀란드인 시벨리우스를 통해 핀란드가 아닌 춘천의 정경에 뜨겁고 드높은, 집단적 고양감이 고취되면서 의암호와 소양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이다. 이 어찌 탁월하고 절묘한 선곡이 아니리. 4악장 코다의 비올라와 첼로의 끈덕지고 질긴 Ground Bass의 반복에 그 땅을 밟고 사는 민초들의 함성과 환호로 애향심이 고조된다. 베토벤 합창 교향곡이나 브람스의 2번 교향곡 같은 가슴 벅찬 환희다.(이게 바로 라장조의 성격이다.) 이렇게 이종진과 떠난 북구 여행의 종착지는 결국 고향 춘천으로 귀결되었다.

안개에 쌓인 춘천 의암호가 펼쳐진 춘천시향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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