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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14] 음악대학의 변화와 교육 패러다임의 전면적 전환 ④ 마지막 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3.27 08:58
  • 수정 2021.03.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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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에 게재한 원고를 현시점에 맞춰 3부작으로 다시 편집하려다 내용이 길어져 4부작으로 늘린 기사의 대단원의 마지막 편에서는 대학과 한국 클래식의 미래에 대해 다룬다.

이는 어디까지나 열린 결말이다. 우리의 미래는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고 가만히 있다고 희망적인 세상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음악인들 스스로 시대의 흐름을 자각하고 개인적인 안위에서 벗어나 단결하고 연대해서 같이 설계해 나갈 때 지금부터 또 3년 후인 2024년 현재와의 전혀 다른 구조와 생태계를 맞이할 것이다. 3년간 어떻게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이끌어 내게 되었는지는 그때 이 연재기사를 다시 꺼내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이 원고가 무용지물 휴지조각에 불과할지 아님 여전히 유효해 경종을 울릴지 아님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어 있을지는 온전히 음악인들의 몫이다.

대학을 뜻하는 영단어 유니버시티(University)의 어원은 ‘종합’, ‘전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universitas로 이 단어가 대학을 뜻하는 말이 된 시기는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universitas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길드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최초의 대학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볼로냐대(1088년 설립)가 학자들과 학생들의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쓴 것이다. 이처럼 대학은 인류 역사에서 1000여 년간 이어져온 지식 공동체였지만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유례없는 급격한 발전으로 대학이 필요 없는 시대가 조만간 열릴 것이다. 1000년 전 최초의 대학에 비해 지금의 대학은 여러모로 발전했지만 여러 학생들이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교수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공장의 대량생산 시스템처럼 그 당시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빠른 시일 내에 양성해야 했던 지식의 대량 전수 시스템인 셈이다.

2021년 3월에 개교한 서울 영등포구의 신길중학교의 교실은 계단식으로 층층이 쌓아 올려, 교실 지붕이 곧 마당이 되는 독특한 외형을 띄고 있으며 전원마을단지 또는 야외 쇼핑몰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학교의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갈무리: 신길중학교 홈페이지

한국에서의 클래식 음악은 일반 대중들에게 보편성이 상실되어 사회적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고 오직 전문가들의 범주 안에서만 논하게 되었다. 창조자와 수용자 사이의 상호 작용이 현저히 전무한 상황에서 음악의 실 수용자 사이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스스로 고립되어 고사 직전에 있으며 음악시장의 모든 주도권을 상실한 실정에 이르렀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작품이라 할지라도 반향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요 예술을 현재의 우리 시대와 연결해 주고 미래와도 중재해 주려는 관심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곤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하며 작곡가들 스스로만 자기들이 세운 상아탑 속에 홀로 외로이 앉아 자신들에게 화려한 왕관을 씌우고 손뼉 치는 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한국 클래식 음악은 오직 수목적 위계 구조하에서의 학교라는 기관으로만 파고들고 스승과 제자, 동문과 학벌이라는 틈바구니에 끼지 못하면 배제 당하니 대중들의 냉대에 아카데미에서의 억압까지 가세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예술형식이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요구에 부응하려는 현상 그 자체가 그 예술형식의 위기다. 그래서 수용자의 비평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는 점점 더 분리되고 회화나 클래식 음악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을 전달하는 주된 매체는 뮤직비디오가 되었으며 음악만을 감상하는 청중(Audience)은 축음기 발명 전까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그전까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연주하거나 아님 누가 하는 걸 보아야 했다!) 관객(Spectator)으로 지칭하는 게 현재의 매체적 상황을 반영한다 하겠다.

더군다나 작곡가라면 모든 장르와 기법에 통달, 하나의 음악으로 통합하고 주문자의 요구와 기능에 충실한 음악 창작에 매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악이네, 양악이네, 재즈네, 대중음악이네 등등의 세부적인 장르의 쪼갬으로 좁디좁은 호오에 갇혀 서로 평행선만 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의 조화로 예술과 실용음악이 화합된 예술적인 주체를 잃지 않으면서 넓은 층의 청중의 음악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음악을 창조하여야 한다. 음악과 삶, 음악과 청중, 예술과 현실, 예술 음악과 대중음악 등 전통적으로 음악에 내재한 이분법을 극복하고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클래식은 과거의 음악이 아니다. 서양문화라는 지엽적인 한계를 넘어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체로 걸러진 인류의 문화이다. 시대와 함께하며 그 시대상을 생생히 반영했다. 지금의 BTS가 100년이 흐른 후손들에게 한 시대를 풍미한 금자탑으로 남을 듯이 베토벤은 그 당시 태동한 시민계급의 대변자였으며 쇼팽, 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는 당대의 슈퍼스타요, 로시니, 베르디, 바그너는 텔레비전이나 영상이 없었을 당시 사람들의 오락을 담당한 극장의 엔터테이너였다. 시류에 따라 유행과 취향은 변하는 게 당연한 법, 지금의 소통 방법도 기술 발전과 디지털화로 인해 인터페이스의 변화로 인한 미디어 음악이 지금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다. 혁신적으로 시대를 선도했던 클래식 음악이 학교로 들어가면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잃고 더욱 협소와 고립을 가속화 시켰다. 학교라는 곳은 기성세대가 짠 커리큘럼과 규범을 학습하는 장소, 얌전히 착실히 모범적으로 잘 따라 해서 대학 가고 학위 따고 온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좁은 음악계 안에서 그런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계의 메이저리티(Majority) 되어 버렸기 때문에 "끼"와 "흥"이 사라져 버리고 경직된 클래식 음악계가 되어버렸다. 팔딱팔딱 뛰는 생동감과 혁신을 잃어버려 그저 과거의 유물, 박제품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아웃팅(Outting) 당할까 겁내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진다. 동문, 선후배, 동종업계 사람들의 평가에만 전전긍긍하고 자신만의 브랜드 생성은 내버려 둔 체, 그저 아직도 학생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해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만 간절히 원하고 그걸 통해 실적을 입증해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조용히 사는 게 목표다. 그저 강의가 끊기지 않고 대학에 출강하고 잊을만하면 자신이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알려야 하니 음악회를 개최한다. 해봤자 오는 사람도 뻔하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자신의 돈 들여가면서 하는 거니 신나고 색다르게라도 하면 좋을 텐데 주변 사람 눈치를 너무 본다. 창조와 창의라는 예술의 기본 보다 튀지 않고 무난하게 스캔들 안 나는 게 중요하다. 집안 잔치에 와준 사람이니 고맙다. 머릿수 채워주고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이 만족하면 클래식 대중화요 소통이 된 것으로 착각한다. 다들 클래식을 좋아할 수 없다. 그게 클래식 음악이자 문화예술의 특수성이다. 그래서 음악은 경영의 소재가 될 수 없고 경영의 논리로 풀 수 없는 심원한 세계이다. 클래식 음악을 힙합이나 트로트, 아이돌 케이 팝과 비교하거나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리석은 거다. 동일선상의 가치 판단은 불가능하다.

작년에 개교한 마을 개방형 학교라는 콘셉트의 강서 마곡하늬중학교는 일단 교문부터 없다. 사진 갈무리: 마곡하늬중학교 홈페이지

필자는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저출산 등의 당면 과제를 잘 극복하면 현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할 축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가짜가 없어지고 진짜가 살아남을 거다. 인류사가 그랬듯이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접근과 생활양식을 요구할 것이고, 그 변화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장르와 영역, 대상들의 경계를 넘나들며 분산된 주도성을 유기적 연대를 통해 삶과 결부된 가치와 즐거움을 찾는 개개인의 주도적 행보에 파트너로 자리하며 밀레니얼 세대의 주도적으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행보가 드러나는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 생생한 살아 있는 음악예술을 추구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나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높게 평가받는 동시에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마인드로 클래식 음악계 패러다임 변화 창출이 필자 일생일대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시대와 사회, 환경, 국민과 같이 가야 한다. 그게 바로 현시대가 요구하는 음악이요 우리 대한민국의 클래식 음악이 될 것이다. 외래의 문화는 이 땅에 들어와 이 땅의 여건과 환경, 국민성에 맞춰 전환, 해석, 재창출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정신과 역사성이 깃든 우리만의 클래식 음악이 진정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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