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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문 수필 공모 당선 ‘김시현 수필가’

김주선 수필가
  • 입력 2021.03.18 15:52
  • 수정 2021.03.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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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회 한국산문 수필 공모전에서 ‘고향과 가족은 창작혼의 영원한 금광으로 일생 동안 파고파도 여전히 그 매장량은 측정할 수조차 없는 영혼의 안주지’라고 평한 작품 ‘남해 가는 길’로 당선되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남해가는 길’은 ‘안주지를 찾아가는 노정은 때로는 소풍처럼 동화적이지만 때로는 상처를 건드리는 아픔이기도 하며, 때로는 그 둘이 공존하기도 한다. 어떤 과정이든 고향 찾기의 글에는 작가의 가슴 깊숙이 묻어둔 아련한 배경을 통해 작가정신의 실체가 드러난다.’라는 심사평이 적혀있다.

‘유년 시절, 돌아가시기 전까지 일기를 썼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글쓰기는 좋아했지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평소에 SNS에 일상을 적는 모습을 보고 동생의 권유로 문예창작학과를 추천받게 되었습니다. 정년이 없는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어렵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힘들고 어려운 과정에서 성장해 가는 희망이 생겼습니다.’라고 밝히며"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등단은 격려와 함께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한 시작이기도 합니다‘ 라고 등단소감을 밝혔다.

남해가는 길/김시현

 

  아버지 기일이라 동생과 함께 가는 남해 고향 길 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에는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들녘엔 봄기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농부의 손길이 필요한 밭갈이가 한창이었다. 언덕엔 연둣빛이 꼬물거리고, 살랑이는 바람결에 나뭇가지는 수줍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와 함께 갔던 쌍계사 벚꽃길이 떠올랐다. 집 담 너머 운동장에서 보았던 벚꽃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꽃길은 황홀 그 자체였다.

2021.4월호 표지
2021.4월호 표지

초등학교 5학년 때 도로가 확장되면서 우리 집은 도로가 되었다. 아버지는 지금의 집을 설계하여 도면을 그렸다. 수직인지를 살피기 위해 다림추를 실에 매달아 땅의 지반을 다졌다. 인부들과 함께 손수 집을 지으며 혼과 정성을 쏟았다. 마루와 연결된 부엌 위에 다락방도 만들었다. 나와 동생은 틈만 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다락방에서 놀았다. 꽃잎과 풀로 밥을 짓고 소꿉놀이도 했다. 작은오빠는 다락방에 숨어 있는 나를 용케도 찾았다. 아버지가 화단에 나무를 심는 날이면 우리는 물을 주며 이름을 알아갔다. 단감나무를 심어달라고 조르면 돌감나무에 접을 붙여 주었다. 해가 지난 후 단감 맛을 확인하며 신기해했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조간신문에 있는 소식을 식사 중에 가족들에게 전해주었다. 재미로 보는 운세와 논설위원이 쓴 칼럼 지면을 애독하며 대학 입시를 앞둔 큰오빠에게는 시사 부분을 잘 보라고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손에 들려진 봉투에는 먹거리와 큰오빠 에센스 영어사전과 일반상식이 들어 있었다. 어쩌다 내가 읽을 위인전과 수수께끼 책도 들어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설렘은 우리의 놀이였다.

6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만년필과 함께 빨간 뿔도장과 영어 첫걸음을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사 왔다. 나는 작은오빠에게 영어 철자를 익혀 달라고 했다. 언니는 아버지한테 한글을 깨우쳐 입학했다며 중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방과 후 가르쳐 주었다. 언니와 함께 저녁 밥때가 되기 전 시계추처럼 노래를 부르는 건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곧장 따라 부르기도 했다. 노래가 들리지 않는 날은 우리 현이 어디 갔나 노래 불러야지라며 노래를 재촉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틈이 날 때면 일어책과 한문으로 쓰인 책이 손에 들려져 있었다. 화선지를 꺼내며 나에게 먹을 갈아 달라고 곧잘 부탁했다. 봄을 맞이하여 좋은 기운을 기원하는 뜻이라며 입춘대길을 써서 벽에 길게 붙여 봄기운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주는 일상은 평화였고 쉼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보아왔던 아버지의 퇴적된 삶을 사랑한다. 삶이 고달플 때면 그때를 회상해 본다. 군것질을 좋아했던 당신은 겨울이면 연탄아궁이에 둥근 석쇠를 올리고 쥐포와 노가리를 구웠다. 군불을 지피고 불기운이 남은 잿더미에 식구 수대로 고구마를 구웠다. 까맣게 익은 군고구마를 고무래로 끄집어내었다. 우리는 따뜻하게 데워진 구들방으로 모여들었다. 아버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남매들을 불러 앉히고 보따리를 술술 풀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를 깜박 속아 넘어가게 꾸며서 해주었다. 신이 난 아버지는 몽유병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귀신 이야기와 몽유병 이야기에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었다. 언니는 나에게 호들갑을 떤다며 면박을 주었다. 장난기가 많았던 아버지와 작은오빠는 손발이 맞아 나의 뒤집어쓴 이불을 벗겼다. 엄살과 겁이 많았던 나는 발버둥을 쳤다. “우리 현이 잡아가라라며 약을 올려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고 껄껄 웃었던 아버지였다.

고등학교 때였다. 휴일이면 나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갔다. 그날은 쌍계사 십 리 벚꽃 길 이었다. 벚꽃을 좋아했던 당신은 구경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무 중에 혈압으로 쓰러졌다. 아버지 회사는 진주에 본사가 있었다. 평일엔 남해·하동에서 근무했다. 본사에 출근하지 않고 도로 사정을 파악하여 전화로 보고하는 업무였다. 월급날인 25일과 특별한 날에만 진주에 갔다. 월급날이면 진주에서 바나나를 사 왔다. 바나나를 먹기 위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두고 기다리는 즐거움이 컸다.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니던 직장도 퇴사하게 되었다. 다행히 꾸준한 치료로 뇌출혈은 완쾌되었다. 지병을 앓았던 당뇨 합병증은 악화하여 고통이 올 때마다 당신이 직접 인슐린 주사를 몸에 놓았다. 식이조절에도 불구하고 폐로 전이하여 투병 생활은 15년 동안 지속했다. 나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당신은 가족들 소식과 건강이 좋아졌다며 걱정하는 나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왔다. 생존해 있다면 글을 쓸 때마다 조언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많은 끼 중 글쓰기를 닮고 싶다. 아버지가 해주었던 이야기처럼 글을 술술 잘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69세에 우리 곁을 떠났다. 막내로 자라 가족애가 지극했던 당신은 큰오빠 작은오빠에게 당부하며 유언을 우리에게 남겼다. “지금처럼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품을 정리하던 날, 당신의 손때 묻은 일기장과 다이어리만 몇십 권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노트를 보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아깝게 갔다.”라고 했다.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아버지의 유품을 태워야 한다고도 했다. 당신이 걸어왔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은 마당 불꽃 속으로 하나둘 던져졌다. 언니의 만류에 겨우 한두 권만 남았지만, 당신이 입었던 옷과 애장품인 라디오도 함께 불 속으로 타들어 갔다. 아버지와 동고동락을 했던 좌식책상도 불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점심시간이 지나 남해 집에 도착했다. 친정집 앞에는 큰 개울이 흐르고 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썰매를 끌어주었던 개울이다. 도로 옆에는 버리들 들녘이 반듯반듯 펼쳐지고 있다. 들녘과 맞붙은 해안도로가 있다. 망망대해 강진 바다는 가없는 수평선을 이루고 있다.

골등 상짓골 언덕 아래 마당엔 연둣빛 융단이 깔려있다. 봄이 먼저 찾아온 바위틈 사이로 철쭉이 만개해 있다. 잔디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도 햇볕을 쬐며 뛰놀고 있다. 화단에는 꽃망울이 봄바람에 터질 듯 하늘거리고 있다. 생전에 심었던 나무들만 아버지 모습처럼 꿋꿋하게 서 있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던 식구들은 우리를 맞이했다. 남자들은 제사상과 제기를 닦고 병풍을 손질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생선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분주하게 생선을 찌고 굽는 냄새가 허기진 입맛을 돋운다. 가족들이 함께 준비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고 차례대로 절을 하고 음복을 했다.

우리는 제사를 일찍 끝내고 엄마 손을 잡고 밤바다로 나갔다. 멀리 보이는 어선과 달빛은 바다를 비추어 아른거렸다. 가로등은 해안도로를 밝히 비추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온 식구가 평상에 둘러앉아 별을 찾았던 아련한 시절이 달빛에 그려진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촘촘히 박힌 별 무리가 바닷물에 내려앉을 듯하다. 언니는 아버지가 즐겨 불렀던 애수의 소야곡’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을 선창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콧잔등이 시큰하게 아려온다. 짭짤한 바다 냄새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봄바람을 타고 콧속으로 스며든다. 그윽한 달밤과 함께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아버지가 웃으며 우리 곁으로 걸어오는 듯하다.

 

 

김시현 수필가
김시현 수필가

김시현

경남 남해 출생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fence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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