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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09] 백신 접종장의 한가락 첼로 선율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3.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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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시간으로 토요일인 13일 오후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의 버크셔 커뮤니티 칼리지 체육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한창이라 어수선하던 실내에 갑자기 첼로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1번과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등 대중에 익숙한 곡조가 흘러나오자 주변이 일순간 조용해지고 모두가 귀를 쫑긋하며 선율에 몸을 맡겼다.

JTBC뉴스룸, 백프리핑
백신 2차 접종 후 백신접종장 한켠에서 자신의 첼로를 꺼내 바흐를 연주하는 첼리스트 요요마, 사진갈무리: JTBC뉴스룸, 백프리핑

아름다운 선율을 켠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였다. 2차 접종을 하러 오면서 첼로를 가지고 온 요요마는 자신에게 백신을 놔준 힐러리 바샤라는 간호사에게 백신을 맞고 나서 연주를 해도 되는지 물은 다음에 코로나로 인해 그리고 백신을 맞으러 온 불안한 마음과 지치고 힘든 의료진을 위해 작은 위로와 치유를 선사한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거기 모인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고 요요마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올리며 화답했다. 현장 책임자인 레슬리 드래거는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약간의 음악만으로도 건물 전체가 얼마나 평화로워졌는지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며 감동을 전했다.

다들 지치고 불안한 시기 생각지도 못한 거장의 연주에 놀라움과 위안을 느꼈을 테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와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을 텐데 코앞에서 들은 연주가 평상시엔 접하긴 어려운 거장의 손길이었다니.. 의료진들, 자원봉사자들, 백신을 맞으며 불안했을 시민들.. 같은 마음으로 평화를 얻었을 즉석 콘서트.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이와 같은 요요마의 모습을 보며 영화 <타이타닉>에서 난파하는 타이타닉호에 끝까지 남아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을 다한, 그래서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가올 천국을 노래하면서 안심시키느라 결국 도피를 단념한 채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을 연주한 영화 <타이타닉>의 현악4중주단 장면이 연상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세월호 참가 희생자를 위해 제주도 위령제에서 연주했던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 슬퍼하는 어머니를 위해 연주한 곡이었던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 한국전쟁 당시 아수라장이 됐던 피난 열차에서 어느 음악평론가가 축음기를 꺼내 곡을 틀었는데 열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이렇게 음악은 입력과 산출을 수학적으로 조합한 물리적인 알고리즘을 초월한 우리 감정보다 더 깊은 무엇에 관한, 진동 너머의 진실과 울림을 선사하는 영적인 힘을 가진 언어이자 꼭 필요한 삶의 동반자이다.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코로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맞서고 있는 이때, 국민들이 낙담하고 의기소침해 하고 있는 이때, 문화예술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고 격려와 활력을 선사해야한다. 이는 마치 의료진의 숭고한 자기희생같아 음악으로 위로와 희망을 전해야 한다. 그게 바로 문화예술의 진정한 역할이며 분열과 갈등, 편가르기에만 골똘하는 정치가 하지 못하는 너머의 영역을 문화의 힘으로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힘이자 온갖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의 행태를 넘어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를 넘어 세계를 하나로 단합시키고 한마음으로 품게 만든다. 이야말로 테오도르 호메스가 언급한 ‘정치로는 문화를 만들 수는 없지만 문화로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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