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어느 나무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1.03.12 17:02
  • 수정 2021.07.02 17: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소수자의 죽음

 

어느 나무

 

어느 나무엔 예쁜 꽃이 피고

어느 나무엔 가시만 있지만

그렇다고 두 나무 다

자연의 사랑을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어떤 나무는 햇살을 맞고

어떤 나무는 폭우를 맞지만

그렇다고 두 나무 다

신의 사랑을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어느 사랑은 지지를 받고

어느 사랑은 지탄을 받고

그렇다고 두 사랑이 다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어떤 사랑은 잘 자란 나무처럼 뻗고

어떤 사랑은 시드는 나무처럼 마르고

그렇다고 두 사랑이 다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무도 사람도 놓아둔 곳에

놓인 것 뿐이다

 

38일은 3.8민주의거의 날이기도 하지만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하다. 중세시대엔 여성에겐 영혼이 없다고 생각했다. 성별이란 무엇일까? 성별도 나이처럼 사회적 나이, 심리적 나이가 있듯, 사회적 성별, 심리적 성별도 있다. 생물학적 성별만 성별이 아니다. 최재천 교수는 성은 스펙트럼과 같다고 한다. 남성, 여성이 끝단에 있고 그 중간에 남성 같은 여성, 여성 같은 남성이 스펙트럼처럼 다양하게 분포한다고.

남성과 여성, 그리고 중간성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의지로 바꾼 거 말고 타고난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랍에 태어나든 아프리카에 태어나든 우리나라에 태어나든, 달걀형 얼굴이든 둥근형이든 각진 얼굴이든 선택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것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성별도 롤즈의 무지의 베일처럼 어떤 성별을 타고나든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된다.

여성을 인정하지 않던 과거처럼 다른 성을 인정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건 현대사회 윤리가 아니다. 고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우리가 돌보지 않았던 정인이 죽음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살인이다. 인간의 목숨보다 강한 사상은 없다. 가치에는 우위가 있는 거다. 생명이 최고고 그 다음 사상이니 사고니 정치니 성별이니 사회니 다 하부서열인 거다. 남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사소한 관념 하나 바꾸지 못하는가? 오죽하면 그렇게들 죽어 나가는가? 도대체 몇십 명이 더 죽어야 사회는 바뀌는가? 태완이법, 윤창호법, 한 명만 죽어도 법이 새로 만들어지는데 성별에 있어서는 절대 사회가 바뀌지 않는 것이 공정한가?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자란 이유로 쫓겨나거나 비참해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탈무드에서는 한 사람의 무게는 지구 전체의 무게와 같다고 한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게는 지구 전체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관절 뭐길래 한 우주를 뺏는가? 사소한 불편함이 생명을 앞설 수 없다. 더 이상의 무모한 처형은 이제 그쳐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