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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이긴 것처럼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1.03.08 17:10
  • 수정 2021.08.18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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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민주의거의 날

 

천년을 이긴 것처럼

 

춤춰라 천년 전쟁을 이긴 것처럼

전우는 화염에 휩싸여

흙 속에 뒹굴지만

나는 행진한다

천년을 이긴 것처럼

사랑이 다할 때까지

남은 사랑으로

조국을 지키며

잊혀진대도

그대는 영원하리

죽거나 이기거나

살아서 무슨 영화가 있으리

적도 산다면

지구 끝까지 물리쳐

동토를 부수리

운명의 경계 속에

목숨을 묻어라

국가여 행군하라

죽음을 지나도록

역사여 기억하라

이날의 용맹을

후대가 알게 하라

 

1960년 3월 8일 대전에서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학생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격렬했던 사회운동을 뒤로 하고 젊음은 이제 늙음이 되서 안일한 사회 속에 기득권자가 되었다. 젊은 날의 투쟁은 낡고 닳아 스스로의 사상만 추레하게 남아 꼰대가 되기도 한다.

열렬했던 운동가는 이제 자기 자식만 살피는 부모가 되고 경제가 최고지 하면서 밥벌이에 몰두한다. 부르짖던 정의는 꼬장꼬장한 의식만 남아 경계를 침범하면 등을 돌린다. 독재에 항거하던 입술은 스스로 전제주의 군주가 된다. 사상의 성에 갇혀 침공을 불허한다. 그마저 건드리면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가장 거세었던 운동가는 남을 왕따시키고 소규모 권력을 휘두르며 정의를 위반한다. 학생 때 자칭 사상가들은 속세에 물든다.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그리스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형평성을 추가하여 로마에 와서는 유스티티아(Justitia)가 되어 정의(justice)의 어원이 된다. 디케는 눈먼 여신이다. 예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안대 안에서 눈을 뜨고 있지 않을까요라며 보고 있다는 의미로 말하지만 오류다. 천 안에서 눈떠도 시력이 원래 없다.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상대를 가리지 않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의를 실행한다는 의지다. 눈만 감아도 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양의 조각들은 하느님께 보이기 위해 지붕에 많이 세워지기에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아 안대를 새긴 건지도. 

실제 유럽에서 건물 위에 세운 동상들을 볼 때 보이지도 않는데 왜 저렇게 높이 세웠나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에선 여신이 안대라도 하지 않으면 상징성을 알 수 없다.

한 손엔 저울, 한 손엔 칼. 동일한 양의 빵을 잘라 동등하게 나눈다. 당신의 양심은 동등한가? 당신의 사상은 아직도 정의로운가? 당신의 삶은 아직도 누군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안대를 하고 있는 당신은 이제 그 안대를 풀어야 한다. 상대를 바로 보고 약자를 더 위하고 가난한 자에게 더 많은 빵을 주어야 한다. 오늘날의 정의는 복지이기 때문이다. 

정의, 이제는 눈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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