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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은 바람에 날려 보내고

조연주 여행작가
  • 입력 2021.02.08 21:13
  • 수정 2021.02.0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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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여행을 떠난다는 지인이 제주는 다 좋은데 바람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제주의 강한 바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행의 방해요소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바람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의 근심과 묵은 때를 날려 보내라고 말한다.

1년 중, 두 번째로 계획을 많이 세우는 기간이 돌아왔다. 11일에 세운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난 사람들은 음력 설날, 구정이 되면 또 한 번 마음을 바로 잡는다. 어느 순간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봤는데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부분이 시간이다.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가는 시계바늘은 내 마음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폭포수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반대로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흘러간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는 시간낭비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 역시 돌아보면 후회하며 지내온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새해 다짐은 늘 같은 다짐이 매해 반복되었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로 늘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이루지 못한 목표와 다짐은 털어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루지도 못하는 짐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게 제주는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곳이었다.

육지보다 조금 강한 바람은 제주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적응되어갔다. 우연히 제주에서 만난 태풍은 모든 것을 휩쓸어 갔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변덕스러운 제주의 어떤 날씨에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강력한 태풍에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무서웠다. 태풍이 몰아친 순간 어떤 마음의 근심도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에겐 감당하지 못할 고통은 없다는 사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가면 화창하고 평온한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진짜 태풍을 만난 후 알았다. 이렇게 제주의 바람은 나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살다보면 맑고 화창한 날만 있을 수는 없다. 흐리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태풍이 몰아치는 날도 만날 수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찌 보면 하루하루가 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렇게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바람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생에서 우여곡절이 일어났을 때 후회하거나 분노하거나 원망하기 쉽다. 상처는 모래에 적어놓으면 바람이 불어와 원망과 미움을 지우고, 기쁨은 돌에 새겨 놓으면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바람이 흔들 때 견디는 방법은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같은 방향으로 리듬을 타며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강한 생명체보다 부드러운 생명체가 수명이 더 길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도 좋지만, 흔들린 경험이 부족하면 외부의 작은 힘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제3의 힘에 의해 많이 흔들려봐야 한다. 지금 흔들리지 않으면 나중에 더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흔들려본 사람은 웬만한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다.

지난 시간에 얽매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날은 바람에 날려 보내고, 다가올 봄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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