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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 울타리를 넘지 마십시오

모은우 전문 기자
  • 입력 2021.01.3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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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죽었습니다.

그는 눈앞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평범한 사무실로 눈앞에는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남자가 책상에 앉아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 알고 있습니다. 죽는 순간의 기억이나 살아있을 때의 기억은 없지만 느낌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죽었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당신은 저승사자입니까? 아님 천사입니까? 악마입니까?

저는 말씀 하신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인도자일 뿐입니다. 사후세계에 오신 분들이 잘 적응하시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되는 건가요?

간단합니다. 당신은 이제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면 됩니다.

그게 끝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미 사후세계에 와있는 당신의 가족들과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다시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으로 괜찮은 겁니까? 제가 지은 죄에 대해서 심판하는 과정 같은 것도 없는 겁니까?

당신은 그저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당부해 두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울타리를 넘지 마십시오. 무슨 말인지는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인도자와의 만남이 끝나고 그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곳에 안내되었다. 그곳은 그가 어릴 적에 살던 고향이었으며 이미 세상을 뜨셨던 부모님까지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살던 고향마을에서 좀 더 멀리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살던 고향은 작은 마을이었고 그와 어울릴 수 있는 비슷한 나이또래의 아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논길의 도랑을 달려 나갔다. 그의 고향은 시골마을이었으며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이 마을 입구와 이어져 있었다. 그는 도랑 쪽으로 자전거를 달리다 언덕을 올라 흙길 쪽으로 올라섰다. 자전거의 폐달을 계속해서 밟던 그는 어느 순간 자전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을을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출구 자체는 있었지만 사람 키보다 몇 배나 큰 거대한 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그 울타리는 탱자나무가 일렬로 빈틈없이 늘어선 탱자나무 울타리였다.

탱자나무는 크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잔뜩 돋아나 있었기 때문에 탱자나무가 나란히 길게 늘어서 있으면 좋은 울타리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탱자나무를 넘어갈 수 없었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반갑게 맞아주시는 부모님께 낮에 있었던 일을 말씀 드렸다. 그러자 부모님은 대단히 깜짝 놀라시며 그에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다시는 그 울타리 쪽으로 가면 안 된다.

어째서요?

그곳은 위험한 곳이란다.

부모님은 그에게 위험한 곳이라고 경고를 하셨지만 그로서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다음 날 부모님 몰래 자전거를 끌고 나가 다시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자전거를 타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쭉 둘러보며 넘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나갔다.

그의 노력은 허사가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리던 그는 다행히 탱자나무 울타리 중 어린아이 한 명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틈을 발견한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곧 그 고민을 접어둔 채 자전거를 끌면서 울타리의 틈 안으로 들어갔다.

틈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좁은 틈이었기에 탱자나무의 가시들이 그의 몸에 파고 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울타리의 너머로는 작은 도로가 이어졌다. 그는 도로를 따라서 계속해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나갔다. 그 도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지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인도자의 경고가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이미 울타리를 넘어버린 뒤였으니 돌이킬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리던 그는 너무나도 지쳤기에 어느 순간 페달 밟는 것을 멈추었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면서 걷던 그는 어느덧 한 과수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넓게 펼쳐져 있는 사과밭.

누군가 그 밭에서 사과를 따고 있었다. 울타리의 밖에서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는 자전거를 끌고 그를 향해서 다가갔다. 사과를 따고 있던 사람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중년여성이었는데 그녀 역시 그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 챈 듯 사과를 따는 손을 멈추었다.

안녕. 귀여운 아이로구나.

안녕하세요.

그녀는 곧바로 사과를 따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자전거를 타서 더워 보이는데 이걸 먹어보렴.

그는 그녀가 건네주는 사과를 받아서 한 입 베어 먹었다. 과즙이 가득하고 달콤한 잘 익은 사과였다.

정말 맛있어요.

그래. 이건 나랑 남편이 키우고 있는 사과밭이거든. 정성을 다해서 키운 거라 맛있을 거야.

그녀는 그윽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니?

그가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순간 자신의 기억이 어느 정도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사후세계로 와서 잃어버렸던 기억의 조각들이 일부 되살아났을 때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살아생전의 그의 아내였던 것이다.

놀란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그 순간에 누군가가 사과밭을 가로질러서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다가온 이를 보고는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왔어요?

. 사과는 많이 땄어?

그는 나타난 이를 보고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전의 아내와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 그 중년 남자는 바로 죽기 전의 그의 모습이었다.

나이 대는 다르지만 한 공간에 같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는 상황을 그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생전의 아내는 그에게 그 중년 남자 즉,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자기 자신인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우리 남편이야. 같이 이 과수원을 키워나가고 있어.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여보. 이 아이 꼭 당신을 닮지 않았어?

생전의 아내가 중년 남자에게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했지만 중년 남자의 표정은 웃고 있지 않았다. 중년 남자는 그녀에게 잠시 무언가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녀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중년 남자의 모습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하였다.

중년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바로 인도자였다.

그것을 보고 놀란 그를 보며 인도자는 입을 열었다.

이래서 울타리를 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째서 당신이 제 행세를 하고 있던 거죠?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에게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해서 죽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당신은 아내분과 과수원을 하고 있었지만 사기꾼의 꾀임에 넘어가서 큰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상심을 한 당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죠. 그리고 당신은 당연히 몰랐겠지만 당신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아내 분 얼마 후 당신의 뒤를 따르고 말았습니다.

인도자의 말에 그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저희들은 이 사후세계에서 죽은 이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머물러서 살 수 있게 만들어 드립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다 다르기 마련이죠. 그렇기에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시간대를 살아갑니다.

그럴 수가.

즉 당신과 당신의 아내 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당신은 어린 시절의 행복한 순간에 머물러 있고 아내 분은 당신과 같이 지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거짓을 연출하고 있는 것일 뿐이잖아요.

아니요. 이것은 당신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당신의 아내는 이곳에서 행복하고 당신도 당신의 공간에서 행복합니다. 당신들은 서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공간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도자는 그가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울타리를 넘지 말기를 부탁 했던 것입니다. 이곳으로 와서 다른 시간대와 공간을 마주하면 쓸데없이 당신의 기억이 되살아 날 수 있기 때문이죠.

인도자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와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도 전부 진짜 부모님이 아니시란 말입니까? 우리의 부모님도 전부 당신과 같은 인도자들이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요?

그런 사실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 사후세계에 먼저 온 당신의 부모님도, 먼저 온 당신의 친척들도, 먼저 온 당신의 친구들도 모두가 자신만의 시간대에서,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가장 행복한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까요.

그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인도자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는 그가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 다시 울타리의 안쪽으로 돌아가십시오. 돌아가시면 다시 당신의 기억을 닫아 드릴 겁니다. 분간하지 못한다면 거짓이든 진실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울타리의 안쪽일 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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