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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72] 이 한 권의 책: 음악에서의 위대성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1.11 08:59
  • 수정 2021.01.1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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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품어왔던 질문이 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동일 작곡가의 A라는 작품이 B라는 작품보다 우위에 있고 유명하지? 당신이 성악가라면 슈베르트의 600곡이 넘은 가곡 중 몇 곡이나 외워서 부를 수 있는가? 아니 몇 곡이나 들어봤고 알고 있는가? 당신이 만약 피아니스트라면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다 연주해 보았는가? 아님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집 1&2권을 다 아는가? 그밖에 곁가지(???)로 감히 폄하될 수 없는 베토벤의 바가텔이나 바흐의 건반 모음곡, 인벤션, 신포니아 등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는가?

PHONO에서 출판된 음악을 9번째, 음악에서의 위대성

악보집에 실린 곡들이 작곡가 본인의 의사를 반영했다기 보다 출판업자가 선곡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벌벌 떠는 게 우습다. ('백조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베를리오즈를 포함해 대략 스무 명의 작곡가(책을 저술한 시점이 약 백 년 전이니 그 후 더 있을 것이고 무명의 작곡가들의 습작까지 합하면 셀 수 없이 많을 테다. 윤동주의 '서시'를 보자. 우리의 의욕에 불타는 작곡과 학생들의 과제곡에 가곡이 나오면 가장 많이 선택되는 시가 윤동주의 '서시'와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다. 그 가사로 되어 있는 노래들은 산술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하다.)가 괴테의 ‘실을 짜는 그레첸’에 음악을 붙였지만 지금은 오직 슈베르트의 것만 연주되고 알려져 있다.

연주할 줄 아는 곡도 연주자 본인이 선택했다기 보다 배우면서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 하게 된 곡이요 그 곡을 하라고 지시한 선생님도 자신의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걸 그대로 전수할 뿐이다. 모차르트의 41곡의 교향곡 중(분명 더 많이 있지만) 우리 지휘자들의 연주곡목에는 통상적으로 그중 4곡 정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럼 다른 곡들은 거장다운 솜씨에서 그 대작 네 곡에 뒤진단 말인가?

나에게는 지겹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이 성악가들에겐 성문영어나 수학 정석처럼 필독서로 취급되고 원(原)국에서는 별로 높게 인정을 받지 않은 작품이 우리나라에 와서 크게 히트를 치고 반대의 경우도 수두룩하다. 오로지 한 국경 안에서만 통하는 위대성과 오로지 역사적으로만 유효한 위대성이 버젓이 존재한다. 바흐와 헨델 이전의 기욤 뒤파이와 조스캥은 위대한 거장이라는 걸 확신하지만 왜 지금 연주되지 않는가? 우리가 현재 연주하는 음악은 기껏 해봤자 바흐, 헨델부터 20세기 초까지의 200년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팔레스트리나를 음악사에 기록한다면 라소, 클레멘스 논 파파, 치프리아노 데 로레 등 이름도 생소한 그와 동시대 작곡가들은 어떤 기준으로 탈락인가? 연주자들, 성악가들이 선호하는 노래와 작곡가들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작품도 상이한 경우가 많다. 클래식 음악인이라고 해도 베토벤, 멘델스존은 알아도 성악가들조차 이름도 못 들어본 목관악기의 거장이 많고 비외탕은 교향곡이나 가곡을 작곡하지도 않았다.

알프레트 아인슈타인(1880-1952)

그럼 예술에서의 위대성에 대한 판단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하는가? 한번 내려진 결정은 지속적이고 견고한가? 위와 같은 끊임없는 질문에 대한 탐구가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 1880-1952) 박사의 집요한 연구의 결과물인 <음악에서의 위대성, 강해근 옮김, PHONO>으로 같이 답을 찾아간다.

결론은 시대적 친화력 또는 친화성, 취향의 변화는 세대마다 달라진다. 즉 오늘 옳았던 것이 나중에도 옳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여러 가지 가정과 질문 끝에 필자가 터득한 건 <보편성>에 대한 이해다. 상술한 비외땅이나 관악 분야의 알프레드 리드(Alfred Reed) 같이 어느 한 영역에서만 전문가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능통하고 한 전문가로서 새로운 세계상을 제시하고 계속해서 기능하고 결실을 맺는 내적 존재의 영원항 향상을 구현하는 게 진정한 보편성이라는 깨달음이다. 과거 한 가지 능력만 갖춘 전문가의 시대에서는 단일 분야만으로 충분했지만 그걸 초월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해서 "모두를 위한 예술!"을 완성하는 거다.

번역은 다른 포노(PHONO)에서 출판한 책들보다 훨씬 낫다. 억지스럽지 않고 술술 읽힌다. 혹자는 이 책도 번역에 대해 지적하던데 예전 20세기에 출간된 아도르노, 기젤라, 달하우스 등의 음악이론, 사상서, 음악학 책들과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부드럽고 유연하다. 옮긴이가 한양대학교 음악대학교수와 음악연구소장을 역임한 강해근이다. 비(非) 음악인의 번역이 아니라서 음악계 내에서 오랜 기간 통용된 단어가 사용되어 적절하다. 도리어 번역을 한 강해근이 책 말미 옮긴이의 말에 가져다 붙인 어디에선가 읽었던 한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구가 되었다.

“예술과 문학에서 1급 예술가들은 극히 드물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등급의 위대성도 있다. 이 영역에서 1급 대가들이 자유로운 창조로 선사해 주는 것들은 전승이라는 방식 덕분에 뛰어난 2급 대가들에 의해 양식(Stil)으로 고정된다.”

아~~지금 내가 하고 있는 예술작업이 왜 어렵다는 푸념을 계속 듣고 왜 무명에서 탈피하지 못하는지 알려주는 해답이다. 결국 짝퉁이 많이 나와 익숙해져야지 그치고 통용되겠구나. 그럼 난 어디에 있고 뭘 해야하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뭐지? 창조? 모방자의 대량 양산? ? 혼합? 아님 유사 작품의 유통???? 결국 이런 것들이 모두 박자가 맞아야지 위대한 작품으로 정착되는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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