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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25 12:08
  • 수정 2020.12.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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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尊嚴)........국어사전에 검색하니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함부로 범할 수 없이 높고 엄숙하다고 나와있다. 뭔가 와닿지 않고 막연하다. 그럼 임금이나 고위 관료 등의 출세하신 분에게만 붙일 수 있는 단어이고 일개 서민, 백수, 하층민은 존엄하지 않다는 뜻인가? 북한의 어떤 치에게 가져다 붙이는 최고존엄이네 뭐네 하는 인간 추종과 우상화가 연상이 되어 콧방귀만 낀다. 괜히 상대적 열등감의 발로로 삐딱선을 타는 게 아니라면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인간은 전부 존엄하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가? 영어로는 dignity다. 아하~~어찌 된 게 한자보다 영어가 좀 더 의미가 와닿는다. 그래도 아직 아리송하다. 존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인간답게, 존엄하게 사는 첫걸음이 될 터이다.

게랄트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박여명 옮김, 인플루엔셜 출판)

독일의 뇌 연구자이자 신경생물학자인 게랄트 휘터(Prof.Dr.Gerald Huether)의 저서 <존엄하게 산다는 것>(박여명 옮김, 인플루엔셜 출판)은 인간다음을 되찾아가는 여정이다. 52쪽에서 존엄을 뜻하는 독일어 Wuerde를 설명한다. 독일어 문법에서 Wuerde는 "~~을 할 것이다"를 가정하는 조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다. 즉 가정법에 활용되는 존엄이라는 단어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지위, 명예, 존중은 사람이나 혹은 환경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한다.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때 맞았던 게 지금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존엄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존엄이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고유의 성질이다.

2장은 특히나 흥미로웠다. 존엄의 탄생부터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인류 역사를 숨 가쁘게 달려간다. 존엄은 인본주의에 대한 귀결이다. 인류의 존엄은 투쟁의 산물이다. 배 속에 잉태되었을 때부터 간직한 인간만의 특권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 고귀하고 높은 가치를 인식하며 살기에는 녹녹치 않다. 그건 우리 음악계도 지극히 마찬가지다. 연주할 데 없고 음악으로 돈 벌어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더군다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연주회의 잦은 취소와 무기한 연기로 인해 좌절과 시련을 겪는 음악인들에게 음악 본연의 즐거움에 빠지고 음악 자체의 숭고함을 존중하고 존엄하게 대하라 그러면 배부른 소리 지껄인 거에 불과하다. 거기서 끝나면 모르는데 그런 말을 한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걸 넘머 적대적인 자세로 변해 싫어하기까지 이른다. 당연하다. 절대 물질이 존재를 앞설 수 없고 인간은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존엄한 존재라고 하면 냉소의 눈길과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을 받는다. 요즘같이 전염병의 창궐하여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감염될지 모르는 파리 목숨과 같은 형국에, 전염병으로 인해 먹고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존엄한 존재니 인간답게 살자고 하면 버럭 화부터 내고 상대를 안 하는 거다. 그 이유에 대해 휘터 박사는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시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불 밖, 집 밖은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 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갈지 모르는 위험이 도처에 널려 있고 이건 내가 조심하고 경계한다고 피해 갈 수 없다. 일상이 불투명해지고 내일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 한가롭게 존엄이라 떠들고 있고 돈이 있어야 대접받고 남들에게 우러름 받을 수 있는데 그건커녕 내 삶이 불안한데 무슨 원천이요, 존엄인가?

필자의 책장에 꽂혀있는 게랄트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

예전 지방의 전문대 교수 시절에 하도 학교에서 졸업생들 취업시키라고 성화를 해서 학교 수업에서 '인문학 강화'라는 해결책을 내놓았더니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교수 같은 발언 그만하고 당장 나가서 학생들 200만원짜리 직장이라도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시키라고 무안만 당했다.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삶, 미래와는 전혀 무관한 학교 취업률 지표를 향상시키는 수단으로서 사람들을 대하는 현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만 발버둥을 치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외면하는 일상에 휘터 박사의 책 여러 군데에 교육에 대한 문제와 중요성을 언급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부럽기만 한 인간 본연에 치중한 선진적인 독일 교육이 휘터 박사에게는 비 인간적이고 학대적이고 몰개성적인 방식이라면 우리나라 교육방식과 체계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결국 인간 본연의 존엄이 높은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독야청정하며 내면의 나침반이 이끄는 데로 영육간의 조화를 꾀하니 고요하고 안정적이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해줄 권력이나 외부의 영향력, 재산, 상징, 지위, 자리 또한 갈구하지 않고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와 평가, 목적의 수단으로 삼지도 않으면서 자신과 타인의 존엄함을 보호한다. 아이러니한게 이미 존엄한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데 읽고 또 읽으면서 자존감을 세울 것이요, 정작 읽어야 할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쁘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며 지내면서 자신의 삶에 불평과 불만을 내놓으면 낙이 없다고 한탄할 것이다. 오늘은 우리를 죄를 사하기 위해 우리의 존엄을 높이고 인간 본연의 위대함을 증명하신 예수님의 탄생하신 성탄절 아침이다. 종교를 떠나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소중하다는 건 일맥상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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