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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영 밖으로 달아난 한양 수비군', 그들은 왜 탈영했을까?

권용 전문 기자
  • 입력 2020.04.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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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규율과 통제가 엄격히 이뤄져야하는 조직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시대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1808년 편찬한 책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탈영병은 곤장을 맞았다. 훈련도감 군인은 수도 수비를 맡으며 탈영 시 처벌이 엄격했다. 초범은 곤장 50대, 재범은 사형인 효시형을 받았다. 병영 물건을 도둑질 하면 바로 극형에 처해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진영 책임연구원은 한중연이 펴낸 12번째 고전탐독 '군영 밖으로 달아난 한양 수비군'에서 "훈련도감의 도망병 처리가 가장 엄격했던 것은 아마도 도망병이 속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중연이 역주 작업 진행 중인 훈련도감 기록 '훈국등록'(訓局謄錄)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에서 윤 연구원은 조선시대 탈영병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군대라는 통제된 조직 속에서 받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고됨과 열악한 처우, 군병들 사이에서 일어난 가혹행위와 신고식 관행이 주요 탈영 요인이라 분석했다.

윤 연구원은 1625년 인조가 황해도에서 탈영병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묻자 무신 신경유가 인심이 매우 사납고 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군사들이 떠맡아서하는 형편이라고 답한 이야기를 근거로 군병에 대한 처우와 탈영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탈영병들은 어떻게 잡았을까? 탈영병이 오랜 시간 체포되지 않으면 가족이나 친족을 대신 잡아들여 자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윤 연구원은 1682년 양주에 거주한 김구정 사례를 소개했다. 김구정은 군인인 동생이 도망쳤다는 이유로 감금됐는데, 바쁜 농사철이 되면 잠시 석방되어 일을 하기도 했다. 탈영병의 가족은 세금 군포(軍布)를 대신 내기도 했다.

한중연 백영빈 연구원은 탈영과 자살 원인이 된 신고식에 대해 "인간관계 질서를 중요시했던 조선시대 유교 사회에서는 힘 있는 관료 조직일수록 '그들만의 리그'로의 진입이 혹독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새로운 관원이 되면 한 달 내내 숙직을 서야하고 진귀한 음식을 여러 차례 조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 연구원은 이 같은 혹독한 신입 신고식이 파타되어야 할 사회적 세습이었으나, 신고식 등의 위장된 괴롭히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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