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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51] 콩쿠르 딜레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08 09:14
  • 수정 2020.03.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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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상이요 한국 문학계에서 노벨문학상과 같은 권위를 인정받아온 이상문학상을 거부한 작가들이 나왔다. 이상문학상을 만든 출판사 '문학과사상사'의 수상 후보작으로 결정된 작가들에게 수상 시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하라는 조건에 작가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소설가 김금희는 2020년 4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단편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고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으며 다른 단행본에 싣지도 못한다는 계약서를 보고 저자로서 참담함을 금치 못해 우수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최은영 작가 역시 3일 오후 문학사상사에 메일을 보내, 황순원- ,현대-, 문지-, 이효석-, 젊은작가상 수상작에 오르면서 이런 조건을 겪어 본 적이 없고 관행이란 대답에 거부감이 들어 상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김금희, 최은영과 함께 우수상 수상자로 뽑힌 이기호 작가 역시 상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연초에 대상과 우수상 수상작들을 묶어 수상작품집을 발간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2019 이상문학상 수상작집 표지
2019 이상문학상 수상작집 표지

시상 제도는 개인, 단체가 달성한 공로를 공인하고 선전하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 명망 있는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전통 있고 권위 있는 상의 수상은 개인이나 단체의 성취에 대한 사회적 인정으로 받아들여 마치 장원급제를 한 마냥 자랑스러워한다. 의타적이며 남을 의식하는 집단 공동체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유독 상이 많고 권위가 높다. 수상작은 전가의 보도처럼 대중들의 판단과 선택에 절대적이어서 왠지 개인의 기호에 맞지 않더라도 상이 가진 권위와 전문성으로 깔아뭉개버린다. 특히나 예술 분야, 클래식 음악에선 가치판단의 기준이 모호하고 생소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에게는 유명한 콩쿠르의 입상이 대중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권위 있는 평론가나 음악계 인사들에게 인정을 받는 좋은 방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전공하는 많은 이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경연 대회라 이름 붙여진 경쟁의 장에 내몰리게 되고, 거기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잘한다’라는 칭찬을 듣게 되며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연주자로 성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국내에만 엄청난 수의 콩쿠르가 개설됐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콩쿠르는 각 단체마다의 철학이나 비전 없이 그저 많은 수의 응모자들을 모집해 수익을 내려는 돈벌이에 급급하다. 그저 이름만 다른 검증되지 못한 콩쿠르가 난립하다 보니 콩쿠르의 권위 역시 자연스럽게 실추돼버렸고, 기량 향상과 음악가로서의 성장을 위해 존재 돼야 하는 콩쿠르가 그저 내신과 자격증, 입시를 위한 하나의 전략 도구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작곡가 류재준, 사진 출처: 작곡가 류재준 공식 홈페이지
작곡가 류재준, 사진 출처: 작곡가 류재준 공식 홈페이지

앞의 이상문학상 수상 파동처럼 자의식이 강한 수상자가 가끔 나타나 수상을 거부하기도 한다. 2013년, 작곡가 류재준은 홍난파의 친일 행적을 들먹이며 친일음악가의 이름을 딴 상은 받을 수 없다고 난파음악상을 거부하였다. 1968년 난파음악상이 제정된 뒤 수상자가 이 상을 거부한 건 작곡가 류재준이 처음이었다. 이전 수상자 중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람도 일부 포함되어 있고 친일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음악인의 이름으로 상을 받기 싫다는게 그가 내세운 이유였다. 더불어 작곡가, 인간으로서 지극히 양심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수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정체되어 있는 건 리차드 용재오닐, 디토 앙상블 등등 수많은 대가들과 스타플레이어들이 출몰했지만 그들에게 쏠렸던 스포트라이트가 클래식 음악의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건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음악도 마찬가지라서 TV조선 방송 미스트롯을 통해 선보인 가수는 그저 휴먼스토리로서의 ‘장윤정 동기’로 한동안 회자될 뿐, 정작 그 가수의 노래는 알지도 못한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향 문제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방해되고 해가 된다는 예술에 예자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자신들의 기준과 잣대로 봉준호 감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탄압하고 폄훼하더니 그런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최광희 평론가(왼쪽)가 출연한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의 대담 장면; 사진 갈무리: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
최광희 평론가(왼쪽)와 최영일 평론가(오른쪽)이 출연한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의 대담 장면; 사진 갈무리: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직후,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의 인터뷰 장면이 인상 깊다.

앵커: 이번 칸 영화제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은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이자 칸 영화제는 어느 정도 권위 있는 시상식인가요?
​최광희 평론가: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시나요??? (하루 종일 방송에 불려 다녀 지치고 신경이 곤두선 날카로운 모습으로)
​앵커: 예?(당황하면서) 아니요......
최광희 평론가 : 우리나라에선 딱 그 정도입니다....... 우리 영화가 상을 받았을 때만 권위 있는 영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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