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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화상 (윤한로 詩)

서석훈
  • 입력 2011.12.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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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화상
윤 한 로

토끼란 놈이 용왕을 워치게나 뭉굴셔놨던지
미구에 용왕 술까정 뺐쳐먹길 할짝할짝 몇 술 배
후래자 삼배 받드키
주는 대로 십배요 이십배요 마시두만
잡것, 각중이 오만상을 찌푸리매 요왕더라
‘여게, 용겜이’ 별호를 지어 진중스레 부름시라
이런 용왕 썩을 녀르 부애 가득 날 일이
‘허, 인자 퇴공이 날 그래 불러싼가’
아뿔싸 술김에도 속이 딱 결리고야
염병땀병할 이왕지사 질러부러라
눈 똑똑이 뜬 채
‘찰찰 다 따러부소 염병, 오날날 우덜 대충 확 놀아부리자’
호랭이맨쿠롬 눈 딱 부닥뜨리이
용겜이 용왕 어떠결에 팔 걷고 또한 가득 딸코야
대충 부아라 놀아라 하였재
오야, 우리 토끼 용국 소년대장에
미인미색 품에 다리고 만세동락 못했을망정

그란히여
마침내 토끼란 놈 낑낑 자래 등에 업쳐
이자 막 만경창파 두둥실 시상 밖이로 나오늬라
난초 지초 온갖 행초 꽃 따먹던 명승 경개
찌그러진 오막살이 굴뚝 연기는 폴폴
아버지 어먼네는 노구 지고 동우 이고
짱구머리 애네들은 울며불며
거개가 고향산천 눈에 아삼삼
가생이 닿도 않아 깡총 뛰어 나난듯날랑
가버리더라, 잡것
자래 놈만 뻐이 기맥힐밲이


시작 메모
판소리 명창 임방울이 부른 수궁가 대본을 읽으며 이런, 이런 하며 혼자만 좋아라 뒹군 적이 있다. 자라란 놈이 호랑이 알불을 깨무는 대문, 토끼가 용왕과 수작하는 대문, 그리고 짯짯하게 어우러지면서도 천방지축 내리닫는 맛깔진 사투리는 가히 천하일품이었다. 민중 작가입네 하는 사람들 글은 이 앞에 내놓으면 어설프기 짝이 없으리라. 거기서 우리 토끼 갖은 고초를 다 겪고 용궁을 빠져나와 벽해수변 물가에 당도할 때인데, 깡창 뛰여 내려서는 자라란 놈 모르는 체로 가는 마지막 대문은 압권이었다. 주제꼴 꼴불견인 우리네들, 그 나름 아름다움을 이렇게까지 쏙 빼내어 한바탕 쏟아내다니.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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