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당나귀 신사(84) - 일에는 절차가 있다

서석훈
  • 입력 2011.11.26 17: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영창(소설가, 시인)
도도녀와 차 한 잔 하는 데까지 성공했다면 차 한 잔으로 그쳐서는 아닌 된다는 건 귀하도 잘 알 것이다. 첫날이니까 차 한 잔 정도로 만족하겠다, 이것은 옛날 사고방식으로 이런 예의를 베풀다간 여자로부터 맹꽁이 같은 인간이란 소릴 듣기 십상일 것이다. 여자를 만났으면 뿌리를 뽑진 못하더라도 변죽이라도 울려야 한다 하겠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약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예를 들면 `스마트폰도 좋지만 가끔은 창밖을 보며 자연을 만끽하고 사색에 빠져들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대답으로 `정말 사색의 공간이 필요해요.` 라든가 `요즘은 여성들이 산에 가는 거 이거 장난 아니지 않습니까? 갖춰 입으면 250만 원 든다는 소리 들었습니다.` 에 `250만 원이 뭐에요? 천만 원은 든데요.`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제 소주값만 오르면 다 오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고 남자가 말하면 `소주값 이건 참을 수 없어요. 저도 소주값 올리면 시청 앞에 나갈 거에요.` `시청에요?` `네 시위할 거에요`. `아이고 소주값 올린다고 여성이 시위하면 카메라가 바로 찍을 겁니다.` `찍으라죠. 소주 안 마시는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이렇게 대화가 술술 풀려나가면서 찻잔도 비고 그만 일어날 분위기가 될 때 시간이 대충 술시가 되어 `어디 가서 가볍게 식사라도 하시죠?` 하고 권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아무리 대화가 통하고 기분이 업 된다 하더라도 `오늘 한 번 코가 삐뚜러지도록 마셔보죠`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돼지 껍데기, 염통, 닭똥집 먹으러 가자고 졸라서도 안 된다.
샤부샤부라든가 복매운탕이라든가 스테이크라든가 한정식이라든가 가급적 깔끔한 집을 고르되 수저 받침까지 나오는 그런 곳이면 더 좋다 하겠다. 물도 냉수보단 오차를 내오는 곳 말이다. 들어가자마자 `물은 셀프입니다`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식사를 하는데 다짜고짜 소주를 시키지 말고 `반주 한 잔 하시지요?` `어머 전 술은 별로.... `
`가볍게 한 잔 하시죠.` `그럼 맥주 한 잔만.` `아 맥주요, 저는 소주를 시키고 아 그러고 보니 소주 하나 맥주 하나 소맥도 가능하네요.` 하며 한번 웃어준다.
이렇게 해서 여자도 평소에 즐겨 마시는 소맥을 마시게 된다. 안주가 있고 예의를 갖춘 남자가 지갑까지 열 작정이니 몰래 스커트 옆 고리 풀고 앉아서 차분히 드신다. 여기까진 일반 여자를 상대할 때의 절차이다. 그런데 잊지 말 것은 당신이 상대하는 여자가 일반 여자가 아니라 도도녀라는 사실이다. 도도녀라면 찻집에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럼 다시 찻집으로 돌아가 보자.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