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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81) - 점수 따기 힘드네

서석훈
  • 입력 2011.11.0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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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이렇게 해서 도도녀와 슈트 입은 사내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볼 때-이렇게 해서란 백화점 꼭대기층 화랑에서의 우연을 가장한 접근을 말한다-두 남녀는 다음 단계로 어떠한 행위를 하여야 하는가? 그림이 어떻다는 등,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 그런 차원 높은 얘기도 주고받았고, 상당한 예의를 갖춰 서로를 높이는 말도 주고받았고, 서로의 미묘한 감정에 대한 조심스러운 확인도 거쳤고, 더 튕겨봐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고, 하니 두 남녀는 정해진 절차에 의해 일을 진행하면 큰 무리가 없다 하겠다. 정해진 절차라 함은 영화관에 가면 표를 사고 기다렸다 입장해서 영화를 다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하듯, 직장에 출근하면 모닝커피를 마시고 업무를 시작해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고 또 차 한 잔을 하고 다시 업무를 시작해 여섯 시 무렵에 끝마치고 퇴근하듯, 퇴근해서 누굴 만나 소주 한 잔 하듯, 남녀가 처음 만나도 그러한 절차가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절차란 처해 있는 시간에 따라 다른 것인데 오후 다섯 시 정도 되면 차를 하기도 애매하고 술을 마시자나 좀 이른 것 같은데 첫 만남임을 감안하여 차로 결정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하겠다.
찻집은 너무 번잡하거나 유원지 찻집처럼 한가한 가운데 70년대 음악에 사방이 통나무여도 좀 곤란하다고 본다. 적당히 손님이 있고 음악도 가벼운 세미클래식 정도가 흘러나오고 종업원이 너무 알랑대며 주위를 얼쩡거리지 않는, 다소간의 품격을 갖춘 얼마간 세련된 풍이면 되겠다. 그러한 곳에서 두 남녀가 원두커피를 앞에 놓고(이때 남자가 설탕 커피를 시키면- 10점이되고 설탕 프림 커피를 시키면 - 20점이 된다)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인데 이때 남자가 여자에게 몸무게나 키나 배변횟수 같은 걸 물어보면 안 되는 건 제대로 교육받은 남자라면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다. 부모님 이름이나 할아버지 성함이 한자로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선 안 된다. 자녀는 몇이냐도 묻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슨 드라마를 즐겨보냐는 물어도 되는데 본인이 드라마에 대해서 여자보다 더 자세히 더 많이 얘기하거나 특히 주연남자 배우를 흉 봐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에 대해서는 다소간 흠을 봐도 무방하다 하겠다. 특히 눈앞의 여자에 비해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못한 구석이 있다는 걸 넌지시 내비치면 플러스 10정이 되겠다. 옷이나 머리스타일의 센스에 대해서도 가벼운 칭찬을 하면 10점이 추가되겠다. 웃는 모습이 혹시 머라이어 캐리 닮았다는 소리 듣지 않는냐고 매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또 10점을 번다. 그러나 원두커핀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하면 도로 10점을 까먹는다. 커피가 좀 비싼 거 같지 않냐고 물어보면 또 10점을 까먹는다. 그럼 20점을 벌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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