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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80) - 관계의 시작

서석훈
  • 입력 2011.10.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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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두 남녀는 그림에 대해서 뭔가 의미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술적 엣지 또는 스타일리쉬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도도녀는 슈트를 갖춰 입은 남자가 예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예술을 거래도 할 수 있다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무릇 예술도 거래가 되어야 한다. 여기 걸려있는 그림들이 제 아무리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면, 쳐다봐도 누구도 사겠다고 하지 않는다면, 모 저명 평론가가 `여기 예술이 있다`고 언론에다 떠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후원하고 말겠어` 하는 결심을 하는 예술애호가가 없다면 예술은 벽에 걸린 채로 고고하게 말라비틀어져 죽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예술을 이해하고 필요하면 거래도 하고 또 예술을 재치있게 논할 수 있는 인물이 절대 필요한데 도도녀가 봤을 때 사내는 이러한 요건을 구비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도도녀는 사실 예술에 대해서 상당히 목이 말랐다. 남자들을 제법 만나 왔지만, 무식한 놈이 어찌나 많은지 그렇다고 돈을 펑펑 쓰기나 하나 애정을 제대로 보여주나, 그저 어떡하면 자빠뜨릴까 그 궁리만 하는 - 자빠뜨려도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것들이 대다수였다. 낭만이라곤 찾아볼 길 없이 머릿속에선 백, 만, 천, 억원 등 화폐와, 벗은 상체, 벗은 하체, 전신누드 등 여체와, 야구공, 축구공, 골프공 등 공들과, 소주, 맥주, 양주 등 주 자 붙은 것들과, 육군, 해군, 해병대, 공수부대, UDT 등 왕년의 군대와, 총리, 장관, 차관, 도지사, 국회의원, 국무위원, 행정수석 등 정치인과, 모 검사, 모 판사, 모 국장, 모 총장, 모 학장, 모 재단이사장, 모 사무총장 등 각계의 주요인물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남자다움과 오지랖 넒음과 세상에 대한 고루한 식견 등을 과시하는데 큰 기쁨을 누리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여성의 섬세한 취향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과 배려와 관심이 있다면 잘난 척 그렇게 떠들어대며 여성이 듣든 말든 우쭐해 하지는 않을 터인데.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또는 중요한 걸 놓쳤다는 듯 앞의 여성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다음 진도가 무엇인가 궁리하지는 않을 터인데.
아무튼 도도녀는 위의 남자들과는 다른, 뭔가 시크하고 아트틱한 남자가 우아한 화랑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사실에 얼마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작은 이렇게 문화적인 배경을 깔고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그러한 생각을 과거에 한 적이 있으며 놀랍게도 최근에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 연애라고 하기엔 그렇고 보자마자 사랑도 아니고 고상하게 `관계`라고나 할까, 관계라는 것이 시작되며 이제는 하나의 몸짓, 하나의 언어, 하나의 한숨, 하나의 눈동자까지 의미를 띄기 시작하며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 무식하게 관계가 시작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도녀는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슈트의 사내를 바라보는 것인데 사뭇 시치미를 띠고 있는 남자의 속셈은 무엇일까. 여자는 모르는 남자의 속셈.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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