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경청은 그 자체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법이다.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다양한 경험과 함께 경륜을 쌓아간다. 그러나 직접 경험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한계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타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모르는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잘 아는 분야도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청을 하는데 있어서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종이접기 김영만 아저씨를 만났다.아마 나보다 조금 연배일 듯이미 다 커 버린 서른서너 살어린이들에게아저씨는 여전히 '코딱지들'이라 불렀다더군. 그럼! 맞지.환갑 아들도 팔순 아빠 눈에는 어린이니까.댓글을 보다 빵 터졌지.'아저씨, 제 나이 반으로 접어 주세요'나이가 색종이라면어릴 적에는 어떤 색일까?초로의 나는 어떤 색일까? 나이를 반으로 접은 다음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종이접기는 손 다림질을 해야나이가 다시 펴지지 않아요.기왕이면 대문 접기로 해서나이를 여닫으면 어떨까? 그러나 어쩌겠나. 나이 먹는다는 게어깨
시를 쓴다는 것은나의 살아 있는 행위이자처절한 몸부림이다. 머리에 시가 지나가는 것이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순간의 영감을 기록으로 남기고스스로의 자유에 즐거워한다. 간밤에 싯말 하나 생각해 내지 못해불면을 자초하고 몇 날 머리 속에 넣고 다니다.야! 이거야! 무릎을 치는 전율의 기쁨! 살면서 나의 교만으로기록하지 못한 글이 한두 개랴마는 신은 우리에게잊어라, 잊으라고 시간을 주셨다. 잃어버린 내 시를 어째야 할꼬?오늘은 죽은 내 시에 술 한 잔 붓고안주 한 첨 줘야겠다.
어릴 적 여름이면 날마다남한강에 멱을 감으러 다녔는데요내가 열 살 먹던 해그날이 그날인 그 어느 날이었습니다또래 계집들과 사내애들이겉옷은 벗어 마른 돌로 눌러놓고빤스 바람으로 퐁당퐁당 잘도 뛰어드는데뒤에 섰던 나는 그만 홍동지가 되었습니다웬일로 나는 빤스를 안 입은 맨 불알이었던 것입니다거기에는 갑자기 말 붙이기가 서먹해진정옥이도 있었는데 말입니다할 수 없이 갑작스레 배앓이를 시작한 나는부아가 치밀어서 땡볕 아래강 건너로 돌팔매질만 해댔습니다 내가 어렴풋 짐작하는 한 사내는지금 껏 그 강가에서 만만한 돌들을 고르고 있으니참, 그 강
고향 떠난 지 이십 년 만에소식 들었다스물일곱 늦지도 않은 나이에장가보내 달라고 제초제 먹은장가갈 욕심에 두어 모금 마시고두어 모금 뱉어 낸촌수로 따지면 종조할아버지뻘어린애들 잠지를 잘 만지던 근덕이 형지금은 어엿한사장님되었다 한다중학교 중퇴하고수몰되기 전까지 농사만 짓던제초제 먹고 나서 내리 한 달그해 처음 나온 부라보콘만바보처럼 빨아먹던얼금뱅이 근덕이 형이도토리 같은 마누라 얻고자식도 아들 딸 구색지게 두어서목욕탕 사장 슈퍼마켓 사장종친회에 돼지 한 마리 내고금박 찍힌 명함 한 장씩주욱 돌렸다 한다참 드물게 고향 떠나 성공한 소
정월 초사흘달랏에서 바라본 달어려서 본 초승달은약간 아래쪽으로엎어진 달이었는데위도가 낮아서일까?하늘에 뜬 달님은바로 놓인 바가지모양이다. 하얀 쪽배 타고 떠나신윤극영 선생님은여기 달랏에서 출발하신 게틀림없나 보다.한국의 반달은하늘 바다를 떠갈 수 없고달랏의 반달은별따라 구름따라 서쪽 나라로가고 가고 또 가서기화요초 만발한정토까지 갔겠다. 오늘밤저 조그만 쪽배 저어까치 까치 설날 부르며윤극영 선생님 뵈러 가야겠다.
김문영은 1980년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주항쟁, 1987년 6·10 민주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온몸으로 맞닥트린 현실 참여자였고 1990년대 중반까지 기자 생활을 한 언론인이다. 1991년 문화일보 창간 멤버로 메이저 언론에 투신한 김문영은 그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레저, 그중에서도 경마에 집중해 종합일간지 최초로 매주 2면씩 경마를 고정면으로 다뤄 선풍적인 인기를 끈 1세대 전문기자이다. IMF 때는 과감히 신문사를 박차고 나와 를 설립하면서 대한민국 생활문화의 변화와 미래를 미리 내다본 프런티어이자
김문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비시시첩(比詩詩帖),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가 출간되었다. 앞서 첫 번째 시집 비시시첩(比詩詩帖), '촛불의 꿈’을 통해 적폐청산, 평화, 번영, 통일을 갈망했던 시인은 코로나19로 엄청난어려움을 겪는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시집을 출간했다. 총소리와 포연 없는 전쟁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맞선 인간전쟁은 잔혹하다전쟁은 참혹하다적이 누군지 모른다끔찍한 전쟁이다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적이다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적이다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죽이고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기별도 없이 매서운 손님이 찾아왔다. 우리를 너무도 당황케 만든다. 손님이 주인이 된 격이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동선을 바꾸고 각별히 살피며 주시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무례한 걸까. 수소문 끝에 알게 된 정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이다. 미미한 존재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손과 발을 단번에 옭아맨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아니 질주하던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고 물자의 이동과 돈의 흐름이 멈추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외국과 왕래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는 하나이기에 모든 흐름이 막히면 일상이 고립된다. 지
옛날옛날먼옛날에높디높은두마을에서로말도하지않고원수처럼살아가는두집안이있었다네한집안엔랑이총각또한집엔비앙처녀랑이랑비앙이는첫눈에반하더니몰래몰래자주만나사랑의싹키웠다네사랑의싹무럭무럭아름답게자라더군부모님께말씀드려결혼승락받으려니두집안은대대손손원수로만지낸지라랑이랑비앙이는결혼할수없었다네둘은서로부여잡고눈물이강물이라사랑의꽃이피어영원히함께하려랑이랑비앙이는산꼭대기오르더니비내리고뚝그친날쌍무지개뜨더이다랑이랑비앙이는무지개너머나라둘이서로꽃이되어눈물로건넜는데랑이랑비앙이는이튿날사람들이죽은채로봤더이다사랑하는두사람이눈물로떠난자리금새싹이자라더니랑이닮은아티소꽃비앙닮은딸기꽃이아
새해 소망과 2020년 2019년의 해가 저물고, 2020년의 해가 떠올랐다. 새해의 마지막과 시작은 늘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엄마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강릉에 갔다. 차를 타고 3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강릉은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방한용 귀마개를 두고 온 것이 후회될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안목항을 거닐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2019년의 나는 참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20대가 되었고,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 나와 비슷한 전국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며, 대학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얻게 되
나로 인해 생겨난나를 따라 움직이는 너는분명 내가 백이라면너는 나의 혼일 게다. 볕을 등지고휴대폰 셔터를 누르다가나는 나의 혼을 보았다. 녀석은 검은 옷을 입었고나에게 들킬까 봐바닥에 납짝 엎드려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몸을 돌려 해를 바라보니녀석은 내 뒤로 숨더군. 바닥에 비친 녀석의 모습은내 생김과 흡사했는데키가 제멋대로 자라더군. 나 살아 있는 동안 늘 함께하다눈감고 잘 때면자유여행을 한다지? 나 죽어 없어지더라도녀석은 남는다 하니이제 내가 나를 사랑하자.